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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적인 미인





황진이(黃眞伊)

일명 진랑(眞娘), 기명(妓名) 명월(明月)
출생지 개성

조선시대의 시인 겸 명기(名妓). 시(詩) ·서(書) ·음률(音律)에 뛰어났으며,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하였다.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에 내어’는 그의 가장 대표적 시조이다. 대표작으로 《만월대 회고시》, 《박연폭포시》 등이 있다.

주요작품 《만월대 회고시》《박연폭포시》《봉별소양곡시》

일명 진랑(眞娘). 기명(妓名) 명월(明月). 개성(開城) 출생. 중종 때 진사(進士)의 서녀(庶女)로 태어났으나,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고 시(詩) ·서(書) ·음률(音律)에 뛰어났으며,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하였다. 15세 무렵에 동네 총각이 자기를 연모하다가 상사병(相思病)으로 죽자 기계(妓界)에 투신, 문인(文人) ·석유(碩儒)들과 교유하며 탁월한 시재(詩才)와 용모로 그들을 매혹시켰다.


당시 10년 동안 수도(修道)에 정진하여 생불(生佛)이라 불리던 천마산(天馬山) 지족암(知足庵)의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유혹하여 파계(破戒)시켰고, 당대의 대학자 서경덕(徐敬德)을 유혹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뒤, 사제관계(師弟關係)를 맺었다.

당대의 일류 명사들과 정을 나누고 벽계수(碧溪守)와 깊은 애정을 나누며 난숙한 시작(詩作)을 통하여 독특한 애정관(愛情觀)을 표현했다. ‘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에 내어’는 그의 가장 대표적 시조이다. 서경덕 ·박연폭포(朴淵瀑布)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렸다. 작품으로 《만월대 회고시(滿月臺懷古詩)》《박연폭포시(朴淵瀑布詩)》《봉별소양곡시(奉別蘇陽谷詩)》《영초월시(?初月詩)》 등이 있다.

- ⓒ 두산백과사전




◆ 서시(西施) - "침어(沈魚)"

『 서시의 미모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조차 잊은 채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춘추 전국 시대의 "서시"는 춘추 말기의 월나라의 여인이다.
어느 날 그녀는 강변에 있었는데 말고 투명한 강물이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비추었다.

수중의 물고기가 수영하는 것을 잊고 천천히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래서 서시는 침어(浸魚)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서시는 오(吳)나라 부차(夫差)에게 패한 월왕 구천(勾踐)의 충신 범려가 보복을 위해
그녀에게 예능을 가르쳐서 호색가인 오왕 부차(夫差)에게 바쳤다.
부차는 서시의 미모에 사로 잡혀 정치를 돌보지 않게 되어 마침내 월나라에 패망한다.

◆ 왕소군(王昭君) - "낙안(落雁)"

『 왕소군의 미모에 기러기가 날개짓 하는 것조차 잊은 채 땅으로 』떨어졌다


한(漢)나라 왕소군은 재주와 용모를 갖춘 미인이다.
한나라 원제는 북쪽의 흉노와 화친을 위해 왕소군을 선발하여 선우와 결혼을 시킨다.
집을 떠나는 도중 그녀는 멀리서 날아가고 있는 기러기를 보고 고향 생각이 나서
금(琴)을 연주하자 한 무리의 기러기가 그 소리를 듣고 날개 움직이는 것을 잊고
땅으로 덜어졌다.
이에 왕소군은 낙안(落雁)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 초선(貂嬋) - "폐월(閉月)"

『 초선의 미모에 달도 부끄러워서 구름 사이로 숨어 버렸다. 』

초선은 삼국지의 초기에 나오는 인물로
한나라 대신 왕윤(王允)의 양녀인데, 용모가 명월 같았을 뿐 아니라
노래와 춤에 능했다.
어느 날 저녁 화원에서 달을 보고 있을 때에 구름 한 조각이 달을 가렸다.

이것을 본 왕윤이 말하기를


" 달도 내 딸에게는 비할 수가 없구나. 달이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었다." 고 하여
이 때부터 초선은 폐월(閉月)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초선은 왕윤의 뜻을 따라 간신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시키며 동탁을 죽게 만든 후에
의로운 목숨을 다한다

◆ 양귀비(楊貴妃) - "수화(羞花)"

『 양귀비의 미모에 꽃도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 』

당대(唐代)의 미녀 양옥환(楊玉環)은 당명황(唐明皇) 에게 간택되어져 입궁한 후로
하루 종일 우울하게 보냈다.

어느 날 그녀가 화원에 나가서 꽃을 감상하며 우울함을 달래면서
무의식중에 함수화(含羞花)를 건드렸더니 함수화는 바로 잎을 말아 올렸다.


당명황이 꽃을 부끄럽게 하는 아름다움에 찬탄하여
그녀를 " 절대가인(絶對佳人)" 이라고 칭하였다.

◆ 조비연(趙飛燕) - "작장중무(作掌中舞)"

『 가볍기 그지 없어 손바닥 위에서도 춤을 출 수 있을 정도였다. 』

중국 한나라 황후 조비연
동서고금을 통해서 가장 날씬한 여인으로 불렸다.
"날으는 제비"라는 뜻으로 본 이름 "조의주" 대신 조비연으로 불렸다.
뛰어난 몸매에 가무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 그녀는
한나라 성황제의 총애를 받아 황후의 지위까지 오르게 된다.

한번은 황제가 호수에서 선상연을 베풀었는데,
갑자기 강풍이 불자 춤을 추던 조비연이 휘청 물로 떨어지려 하지 않는가.
황제가 급히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는데


춤의 삼매경에 빠진 조비연은 그 상태에서도 춤추기를 그치지 않아서
조비연은 황제의 손바닥 위에서도 춤을 추었다.

이런 연휴로 "비연작장중무(飛燕作掌中舞)" 라는 고사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했다.
이렇게 임금의 총애를 받은 비연은 세상에 못하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 세월은 겨우 10년,
황제가 죽자 조비연은 탄핵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평인으로 걸식을 하다가 자살로 그 생을 끝맺고 만다


클레오파트라 7세 [Cleopatra VII, BC 69~BC 30.8.30]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왕조 최후의 여왕(재위 BC 51∼BC 30).

카이사르와 인연을 맺고 복위하였으며 안토니우스와도

알렉산드리아에서 인연을 맺어 결혼하였다.


두 로마의 영웅을 조종하여 격동기의 왕국을 능란하게 유지해 나갔다.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은 마케도니아의 왕가,

특히 프톨레마이오스 가문이 이집트에서 애용한 여성의 이름이다.


그녀는 프톨레마이오스 12세(오보에를 부는 왕)의 둘째 딸로서,

BC 51년 이후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여 이집트를 공동통치하였다.

그 후 한때 왕위에서 쫓겨났으나,

BC 48년 이집트에 와 있던 G.J.카이사르를 농락하여 인연을 맺고 복위하였으며,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카이사르와 싸우고

죽은 뒤인 BC 47년에는 막내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 재혼하여 공동통치하였다.


카이사르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낳아,

카이사리온(프톨레마이오스 15세)라 불렀으며,

그녀는 한때 빈객으로서 로마에 가 있었으나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에 이집트로 돌아왔다.

BC 41~BC 40년 M.안토니우스와 소아시아의 타르소스 및 알렉산드리아에서 인연을 맺었다.

BC 37년 옥타비아누스와의 협조가 결렬된 안토니우스는

재차 그녀 앞에 나타나 결혼함으로써 두 사람의 정치적 ·인간적 유대가 심화되었다.


BC 34년 안토니우스는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에게

로마의 전체 속주(屬州)를 주었다(알렉산드리아의 기증).

그러나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와의 대립은 BC 31년의

악티움 해전으로 번졌으며, 이 해전에서 그녀와 안토니우스 연합군은 패배하였다.

그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안토니우스와 재기를 꾀하였으나,


BC 30년 옥타비아누스군의 공격을 받고

독사로 가슴을 물게 하여 자살하였다고 한다.
그녀의 죽음은 프톨레마이오스 왕가 300년의 종말이고,

로마에 의한 지중해 세계 지배의 일단의 성공이며,

또한 옥타비아누스에 의한 로마제국의 개막을 뜻하는 것이 되었다.

그녀는 용모와 자태에 있어서의 여성적 매력과

수개 국어를 자유로이 구사하는 외교 수완을 발휘하여,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두 사람의 로마의 영웅을 자유자재로

조종하여 격동기의 왕국을 능란하게 유지해 나간 여왕이었다.


그러나 재색을 겸비한 이 여성에 대해서는

단지 고혹적인 매력만이 강조되어, 오늘날까지 요부 ·간부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제정(帝政)의 창생신화(創生神話)를 형성하기 위하여 꾸며낸 설화로 보는 견해도 있다. 클레오파트라의 생애는 많은 문학 작품의 좋은 소재로서 등장하고 있으며,

예전에는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안토니우스전》과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있으며,

근세에 와서는 G.B.쇼의 《시저와 클레오파트라》(1868) 등이 유명하다.

- ⓒ 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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