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黃眞伊)
일명 진랑(眞娘), 기명(妓名) 명월(明月) 조선시대의 시인 겸 명기(名妓). 시(詩) ·서(書) ·음률(音律)에 뛰어났으며,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하였다.
주요작품 《만월대 회고시》《박연폭포시》《봉별소양곡시》
당대의 일류 명사들과 정을 나누고 벽계수(碧溪守)와 깊은 애정을 나누며 난숙한 시작(詩作)을 통하여 독특한 애정관(愛情觀)을 표현했다. ‘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에 내어’는 그의 가장 대표적 시조이다. 서경덕 ·박연폭포(朴淵瀑布)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렸다. 작품으로 《만월대 회고시(滿月臺懷古詩)》《박연폭포시(朴淵瀑布詩)》《봉별소양곡시(奉別蘇陽谷詩)》《영초월시(?初月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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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시(西施) - "침어(沈魚)"
『 서시의 미모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조차 잊은 채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 왕소군(王昭君) - "낙안(落雁)"
『 왕소군의 미모에 기러기가 날개짓 하는 것조차 잊은 채 땅으로 』떨어졌다
『 초선의 미모에 달도 부끄러워서 구름 사이로 숨어 버렸다. 』
초선은 삼국지의 초기에 나오는 인물로
◆ 양귀비(楊貴妃) - "수화(羞花)"
『 양귀비의 미모에 꽃도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 』
당대(唐代)의 미녀 양옥환(楊玉環)은 당명황(唐明皇) 에게 간택되어져 입궁한 후로
◆ 조비연(趙飛燕) - "작장중무(作掌中舞)"
『 가볍기 그지 없어 손바닥 위에서도 춤을 출 수 있을 정도였다. 』
중국 한나라 황후 조비연
클레오파트라 7세 [Cleopatra VII, BC 69~BC 30.8.30] 카이사르와 인연을 맺고 복위하였으며 안토니우스와도 알렉산드리아에서 인연을 맺어 결혼하였다.
특히 프톨레마이오스 가문이 이집트에서 애용한 여성의 이름이다.
BC 51년 이후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여 이집트를 공동통치하였다.
그 후 한때 왕위에서 쫓겨났으나, BC 48년 이집트에 와 있던 G.J.카이사르를 농락하여 인연을 맺고 복위하였으며,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카이사르와 싸우고 죽은 뒤인 BC 47년에는 막내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 재혼하여 공동통치하였다.
카이사리온(프톨레마이오스 15세)라 불렀으며, 그녀는 한때 빈객으로서 로마에 가 있었으나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에 이집트로 돌아왔다.
BC 41~BC 40년 M.안토니우스와 소아시아의 타르소스 및 알렉산드리아에서 인연을 맺었다.
BC 37년 옥타비아누스와의 협조가 결렬된 안토니우스는 재차 그녀 앞에 나타나 결혼함으로써 두 사람의 정치적 ·인간적 유대가 심화되었다.
로마의 전체 속주(屬州)를 주었다(알렉산드리아의 기증).
그러나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와의 대립은 BC 31년의 악티움 해전으로 번졌으며, 이 해전에서 그녀와 안토니우스 연합군은 패배하였다. 그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안토니우스와 재기를 꾀하였으나,
독사로 가슴을 물게 하여 자살하였다고 한다. 로마에 의한 지중해 세계 지배의 일단의 성공이며, 또한 옥타비아누스에 의한 로마제국의 개막을 뜻하는 것이 되었다.
그녀는 용모와 자태에 있어서의 여성적 매력과 수개 국어를 자유로이 구사하는 외교 수완을 발휘하여,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두 사람의 로마의 영웅을 자유자재로 조종하여 격동기의 왕국을 능란하게 유지해 나간 여왕이었다.
단지 고혹적인 매력만이 강조되어, 오늘날까지 요부 ·간부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제정(帝政)의 창생신화(創生神話)를 형성하기 위하여 꾸며낸 설화로 보는 견해도 있다. 클레오파트라의 생애는 많은 문학 작품의 좋은 소재로서 등장하고 있으며,
예전에는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안토니우스전》과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있으며, 근세에 와서는 G.B.쇼의 《시저와 클레오파트라》(1868) 등이 유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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