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한
김두한 [金斗漢, 1918.5.18~1972.11.21] 향년 54세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의송(義松)이다. 3·6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독립운동가 김좌진(金佐鎭)의 아들이다. 서울 교동국민학교를 마치고 협객으로 활동하면서 주먹왕으로 군림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주먹의 힘으로 민족적·의협적인 행동을 하였다. 광복 후 한독당(韓獨黨) 재정위원·대한민주청년연맹 부위원장·대한노조총연합회 최고위원 등을 지냈고, 반탁운동과 노동운동에 종사하였다.
1954년 3대 민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하고, 1965년 6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선거소송, 한독당 내란음모사건 및 국회발언대에서 정일권(丁一權) 총리와 장기영(張基榮) 부총리 등에게 미리 준비한 오물을 투척한, 이른바 국회오물투척사건 등 독특한 정치활동을 하다가가 의원직을 사퇴하였다. 1972년 고혈압으로 죽었다
어린이 김두한
김두한의 아버지
백야 김좌진 장군
김두한의 참모 김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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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과 김영태
종로경찰서 마루오카 경부
신마적 엄동욱
종로의 우미관극장
하야시
하야시 패거리들은 김두한과 많이도 싸웠다.
장군의 아들 김두한과 딸 김을동
국회의원(민의원) 김두한과 우미관 식구들이 우이동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이다.
동대문 사단의 임화수
임화수는 이승만을 아버지 라 부를 정도로 그의 총애를 받았다.
그런 영향력을 바탕으로 영화계의 황제로 군림하게 되었으며, 동대문 사단 을 움직이는 실력자로 등극 이정재에 이어 2인자로 자리 매김한다. 영화계의 황제로 군림 할때 당시의 연예인들은 임화수 앞에만 서도 벌벌 떨 정도로 그를 무척 무서워했다. 김희갑이 임화수에게 얻어맞아 갈비뼈가 부러진 사건은 당시에 큰 화제였다.
재판받는 이정재
동대문 사단의 이정재
시라소니의 부인 이진옥여사
대단한 미인이다
시라소니 아들 돌기념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