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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금수강산

강화덕진진 초지진

 

 강화 덕진진

 

 

강화 덕진진의 공조루

 

 

 

 

 

 

 

 

덕진진의  남장포대 [ 南障砲台 ]

 

소재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46

 

강화는 남··북 삼면에 아무런 방비시설이 없어 소홀한 감이 있었으나

1679(숙종 5)

유수(留守) 윤이제(尹以濟)가 돈대를 쌓아 방비하였다.

 

이 남장포대는 강화 9개 포대 중의 하나로,

1871(숙종 5)에 축조되었으며 덕진진(德津鎭)의 관할하에 있었다.

 

자연적인 지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해상에서는

 적에게 보이지 않는 반월형의 천연요새를 이루어 마치

 중국의 손자병법을 재현한 전략을 연상하게 한다.

 

포좌(砲座) 15문이 설치되었다가 파괴된 것을 1977년에

다시 복원하면서 조선시대 홍이포(紅夷砲)를 만들어 설치하였다.

 

 

 

 

 

 

 

덕진진의 남장포대 [ 南障砲台 ] 에서

 

 

 

 

덕진진의 남장포대 [ 南障砲台 ] 에서 바라본 강화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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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

 

강화 초지진 [ 江華 草芝鎭  

인천 강화군 길상면(吉祥面) 초지리에 해안선을 지키기 위하여 설치한 진.

 

소재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624

1971년에 사적 제225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4,233m2이다.

 

1656(효종 7) 강화유수(江華留守) 홍중보(洪重普)가 처음 설치하였다.

66(현종 7) 병마만호(兵馬萬戶)를 두었다가

 1763(영조 39)에 첨사(僉使)로 승격시켰는데

 이 때의 병력은

병마첨절별사(兵馬僉節別使) 1, 군관 11, 사병 98, 돈군(墩軍) 18, 목자(牧子) 210,

 진선(鎭船) 3척과 무기 다수가 있었다.

 

1866(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

이 곳에서 프랑스 함대의 로즈 소장과 싸웠으며,

 

1871(고종 8)에는

미국 아시아함대의 로저스 중장이 이 곳에 침입하였을 때

필사의 방어전을 전개하다 함락된 바 있었고,

 

1875(고종 12)에는

일본 군함 운요호[雲揚號]와도 이 곳에서 교전하였다.

 

이 초지진은 모두 허물어져 돈()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던 것을 1973년 초지돈만 복원하였다.

 

돈에는 3곳의 포좌(砲座)가 있고 총좌(銃座)100여 곳 있다.

성은 높이 4m 정도에 장축이 100m쯤 되는 타원형의 돈이다.

 

돈 안에는 조선 말의 대포 1문이 포각 속에 전시되어 있는데,

포각은 정면 3, 측면 1칸의 맞배집 홍살로 되어 있으며,

대포의 길이는 2.32m, 입지름 40cm이다.

 

 

 

역사의 상처를 알려주는 노송

 

1866년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 1875년 운양호사건 때의

상처를 안고있는 강화해협의 초지진의 노송앞에서

 

 

 

 

 

 

 

 

 

 

 

 

 

 

 

 

 

 

 

 

 

 

 

 

 

 

 

 

 

초지진 주차장에서 바라본 초지대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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