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
역사상 수많은 사랑이야기 가운데,
절세미녀 양귀비(楊貴妃)와 절대 권력을 휘둘렸던
현종(玄宗)의 사랑
이야기만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있을까!
백거이가 양귀비와
현종의 사랑을 노래한 시의 일부분을 알아보자
回眸一笑百媚生,
눈동자를 돌려 살며시 미소 지으면 끝없는 애교 발산하여,
六宮粉黛無顔色.
수많은 후궁들의 빼어난 아름다움 빛을 잃게 되었네.
後宮佳麗三千人
후궁에는 삼천 명의 미인 있으나
三千寵愛在一身
삼천 명에게 갈 사랑을 홀로 독차지하였네.
당 현종이 재위한 기간 중
전반기인 개원(開元) 연간에는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에 버금갈만한 치적을 세워 '
명황(明皇)'으로 까지 칭해졌으나
후반기로 갈수록 그의 명성은 퇴색하여
당의 멸망을 재촉하는 단초를 제공한 황제가 되었다.
당의 쇠퇴를 전적으로 현종이
양귀비에게 빠져 정사를 그르친 것으로
책임을 돌릴 수는 없을지라도,
현종의 양귀비에 대한
미혹이 정치를 함에 있어 판단과
통찰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현종에게는 여러 가지
수식이 따라 다니는데, 그것들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현종은 당대 (唐代) 여러
황제 가운데 재위 기간이 가장 긴 황제였다.
그는 712년(신라(新羅) 성덕왕(聖德王) 즉위 11년)
황제의 자리에 올라
45년 동안 황제로 군림하였다.
현종은 또한 가장 장수한 황제였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그는 78세까지 장수하였다.
(현종 685-762)
그리고 현종은 자신의
생일인 8월 5일을 경축일로 삼아
전국적으로 3일을 쉬도록 하였는데,
이 또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현종은 자녀를 가장 많이 둔 황제였다.
그에게는 30명의 아들과
29명의 딸 등 모두 59명의 자녀가 있었다.
당 현종의 제위가
더할 나위 없이 공고해질 즈음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비인 무혜비(武惠妃)가 세상을 떴다.
황제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오랫동안 애통해 하였다.
이 때 주위에서 현종에게 여러 여인을
추천하였지만 눈에 들어오는 여인은 없었다.
얼마 후 한 여인이 현종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뜻밖에도
자신의 아들 수왕(壽王)의 비인 양옥환(楊玉環)이었다.
양옥환의 미모에 홀린 현종은
이것 저것 잴 여유가 없었다.
혜비가 죽은 지 1년도 되지 않아
현종은 자신의 비로 삼아
혜비가 받았던 예우로 똑같이 양귀비를 예우하는 동시에,
자신의 아들에게는
다시 다른 여인을 비로 간택해 주었는데,
이 때 현종은 이미 50대였으며 양귀비는 17살이었다.
양귀비의 미모는
백거이가 그의 시 <장한가>에서
묘사한 것처럼 현종을 홀리고도 남을 정도로 출중하였다.
현종은 양귀비와의 사랑에 밤이
짧은 것은 안타까워하며,
조정에 나가 정치를 하는 것을 게을리하기 시작하였다.
이 즈음 잠재해 있던
여러 문제점들과 혼란이 한꺼번에 폭발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안록산(安祿山)의 난이다.
755년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켜
낙양을 공격하여 점령하고는
이듬해는 당시 수도였던 장안(지금의 서안)마저 점령하자,
현종은 양귀비를 데리고
신하들과 촉(蜀) 땅으로 피난 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때문에 현종은 반란군을
피해 도주한 첫 번째 황제라는
불명예 또한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현종이 도주한 이튿날
행차가 마외(馬嵬)라는 지역에 다다랐을 때,
황태자 이형(李亨)은 여러 대신들의 건의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간신 양국충(楊國忠)을 처결하고,
아울러 현종에게 양귀비 또한 사형에 처하도록 압박하였다.
이미 권위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져 명목상 황제로 남아있던현종은
피눈물을 흘리며 애통해 하면서
양귀비를 하얀 비단으로 목 졸라 황천길로 가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때 그녀의 나이 38 살이었다.
君王掩面救不得
황제는 차마 보지 못하고 얼굴 가리며 양귀비를 구하지 못하는데,
回看血淚相和流
뒤돌아보는 황제의 눈에는 피눈물 흘러내리네.
현종은 양귀비를 이곳 마외에
매장한 후 촉 땅으로 서둘러 피난 갔다.
양귀비의 묘는
원래 흙으로 덮여있던 토총이었으나,
이 흙에서 향기가 나고 피부에 좋다는 소문이 나
많은 사람들이 몰래 흙을 파가는
바람에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다.
이에 다시 봉분을 벽돌로 쌓아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양귀비의 묘
양귀비의 묘는
사진과 같이 봉분이 벽돌로 둘러싸여 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한다.
양귀비 묘 부근에 피부가 검고
아주 못생긴 처녀가 있었다고 한다.
외모 탓으로 중매도 안들어와 너무 상심하여
양귀비묘에 엎드려 하늘이 불공평하다면서 대성통곡하였다.
집에돌아와 흙이 묻은 얼굴을 씻었더니
피부가 하얗고
부드러워졌을뿐 아니라 용모도 아주 예쁘게 변했다.
그리하여 드디여
시집을 갔고 이 일이 점차 소문나게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수많은처녀들이너도나도
양귀비묘의 흙을 파가는 바람에 묘가
점점 작아지자
할수없이 묘를 벽돌로 감사 더 파가지 못하도록 하였다는것이다.
그리고 여기 서안(장안)시는
오간정이라고 불리는 이 건물에서
장쉐량(장학량1898-2001)에게 장개석이 납치되여
홍군과 협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국공합작의 현장이다.
백거이의 장한가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는
당나라 때 백거이가 지은 장편 서사시이다.
당 헌종 원화 원년인 806년에 지어졌다.
당 현종 이융기와 그의 비 양귀비와의 사랑을 읊은 노래이다.
배경 [편집]
당 현종(685-762) 재위(712-756)이 죽은 지 50년이 지나
백거이 나이 35세에 친구
왕질부(王質夫)와 진홍(陳鴻)이 그를 찾아와 선유산에 놀러 갔다.
거기서 당 현종 이융기와 양귀비와의 로맨스가 화제에 올랐다.
왕질부의 제의로 백거이는 시인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시로 진홍은 산문으로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신화적인 내용으로 애절하게 썼다.
시의 내용 [편집]
장한가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부분은 양귀비가 총애를 받고,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 양귀비가 죽는 장면,
둘째 부분은 양귀비를 잃고 난 후의 현종의 쓸쓸한 생활,
셋째 부분은 죽어서 선녀가 된 양귀비와 만나보는 장면으로 되어 있다.
특히, 마지막 구절은 작가적인
상상력을 최대한 드러내 애절함을 고조시킨다.
上天願作比翼鳥
하늘에선 날개를 짝지어 날아가는 비익조가 되게 해주소서
在地願爲連理枝
땅에선 두 뿌리 한 나무로 엉긴 연리지가 되자고 언약했지요
화청지의 장한가 공연은
여산 전체를 무대로
사용하여 벌이는 엄청난 스케일의
서양식 기획과 중국식 오페라극 공연으로, 압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되살아 나는 전설 [편집]
시안 화청지는 당 현종이 양귀비에게 지어주었고,
온갖 희로애락을 누렸던 여산온천이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이곳에서 장한가 공연이 매일 있다.
이 공연은 2007년 정비되어 2008년부터 본격적인 선을 보이고, 있다.
빌려온 동영상
양귀비의 목욕탕
화청지에서 장한가 공연 무대
장한가
漢皇重色思傾國 한황중색사경국
御宇多年求不得 어우다년구불득
楊家有女初長成 양가유녀초장성
養在深閨人未識 양재심규인미식
天生麗質難自棄 천생려질난자기
一朝選在君王側 일조선재군왕측
回眸一笑百媚生 회모일소백미생
六宮粉黛無顔色 륙궁분대무안색
春寒賜浴華淸池 춘한사욕화청지
溫泉水滑洗凝脂 온천수골세응지
侍兒扶起嬌無力 시아부기교무력
始是新承恩澤時 시시신승은택시
雲?花顔金步搖 운빈화안김보요
芙蓉帳暖度春宵 부용장난도춘소
春宵苦短日高起 춘소고단일고기
從此君王不早朝 종차군왕불조조
承歡侍宴無閑暇 승환시연무한가
春從春游夜專夜 춘종춘유야전야
後宮佳麗三千人 후궁가려삼천인
三千寵愛在一身 삼천총애재일신
金屋粧成嬌侍夜 김옥장성교시야
玉樓宴罷醉和春 옥누연파취화춘
姉妹弟兄皆列士 자매제형개렬사
可憐光彩生門戶 가련광채생문호
遂令天下父母心 수령천하부모심
不重生男重生女 불중생남중생녀
驪宮高處入靑雲 려궁고처입청운
仙樂風飄處處聞 선낙풍표처처문
緩歌慢舞凝絲竹 완가만무응사죽
盡日君王看不足 진일군왕간불족
漁陽?鼓動地來 어양고고동지내
驚破霓裳羽衣曲 경파예상우의곡
九重城闕煙塵生 구중성궐연진생
千乘萬騎西南行 천승만기서남항
翠華搖搖行復止 취화요요항부지
西出都門百餘里 서출도문백여리
六軍不發無奈何 륙군불발무나하
宛轉蛾眉馬前死 완전아미마전사
花鈿委地無人收 화전위지무인수
翠翹金雀玉搔頭 취교김작옥소두
君王掩面救不得 군왕엄면구불득
回看血淚相和流 회간혈누상화류
黃埃散漫風蕭索 황애산만풍소삭
雲棧?紆登劍閣 운잔영우등검각
峨嵋山下少人行 아미산하소인항
旌旗無光日色薄 정기무광일색박
蜀江水碧蜀山靑 촉강수벽촉산청
聖主朝朝暮暮情 성주조조모모정
行宮見月傷心色 항궁견월상심색
夜雨聞鈴腸斷聲 야우문령장단성
天旋地轉回龍馭 천선지전회룡어
到此躊躇不能去 도차주저불능거
馬嵬坡下泥土中 마외파하니토중
不見玉顔空死處 불견옥안공사처
君臣相顧盡沾衣 군신상고진첨의
東望都門信馬歸 동망도문신마귀
歸來池苑皆依舊 귀내지원개의구
太液芙蓉未央柳 태액부용미앙류
芙蓉如面柳如眉 부용여면류여미
對此如何不淚垂 대차여하불누수
春風桃李花開日 춘풍도리화개일
秋雨梧桐葉落時 추우오동섭낙시
西宮南內多秋草 서궁남내다추초
落葉滿階紅不掃 낙섭만계홍불소
梨園子弟白發新 리원자제백발신
椒房阿監靑娥老 초방아감청아노
夕殿螢飛思?然 석전형비사초연
孤燈挑盡未成眠 고등도진미성면
遲遲鍾鼓初長夜 지지종고초장야
耿耿星河欲曙天 경경성하욕서천
鴛鴦瓦冷霜華重 원앙와냉상화중
翡翠衾寒誰與共 비취금한수여공
悠悠生死別經年 유유생사별경년
魂魄不曾來入夢 혼백불증내입몽
臨?道士鴻都客 림공도사홍도객
能以精誠致魂魄 능이정성치혼백
爲感君王輾轉思 위감군왕전전사
遂敎方士殷勤覓 수교방사은근멱
排空馭氣奔如電 배공어기분여전
升天入地求之遍 승천입지구지편
上窮碧落下黃泉 상궁벽낙하황천
兩處茫茫皆不見 량처망망개불견
忽聞海上有仙山 홀문해상유선산
山在虛無??間 산재허무표묘간
樓閣玲瓏五雲起 누각령롱오운기
其中綽約多仙子 기중작약다선자
中有一人字玉眞 중유일인자옥진
雪膚花貌參差是 설부화모삼차시
金闕西廂叩玉? 김궐서상고옥경
轉敎小玉報雙成 전교소옥보쌍성
聞道漢家天子使 문도한가천자사
九華帳里夢魂驚 구화장리몽혼경
攬衣推枕起徘徊 람의추침기배회
珠箔銀屛??開 주박은병이리개
雲?半偏新睡覺 운계반편신수각
花冠不整下堂來 화관불정하당내
風吹仙袂飄飄擧 풍취선몌표표거
猶似霓裳羽衣舞 유사예상우의무
玉容寂寞淚欄干 옥용적막누난간
梨花一枝春帶雨 리화일지춘대우
含情凝?謝君王 함정응제사군왕
一別音容兩渺茫 일별음용량묘망
昭陽殿里恩愛絶 소양전리은애절
蓬萊宮中日月長 봉래궁중일월장
回頭下望人?處 회두하망인환처
不見長安見塵霧 불견장안견진무
唯將舊物表深情 유장구물표심정
鈿合金釵寄將去 전합김채기장거
釵留一股合一扇 채류일고합일선
釵擘黃金合分鈿 채벽황김합분전
但敎心似金鈿堅 단교심사김전견
天上人間會相見 천상인간회상견
臨別殷勤重寄詞 림별은근중기사
詞中有誓兩心知 사중유서량심지
七月七日長生殿 칠월칠일장생전
夜半無人私語時 야반무인사어시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련리지
天長地久有時盡 천장지구유시진
此恨綿綿無絶期 차한면면무절기
漢皇重色思傾國 한 황제 사랑 그리워함에 나라는 기울어가네
御宇多年求不得 오랜 세월 세상을 살펴도 구할 수 없구려.
楊家有女初長成 양씨 가문에 갓 장성한 딸이 있었으나
養在深閨人未識 깊숙한 규방에서 자라니 누구도 알지 못하나
天生麗質難自棄 타고난 아름다움 그대로 묻힐 리 없어
一朝選在君王側 하루아침 뽑혀 군왕 곁에 있도다.
回眸一笑百媚生 눈웃음 한 번에 모든 애교가 나오니
六宮粉黛無顔色 육궁에 단장한 미녀들의 안색을 가렸다오.
春寒賜浴華淸池 봄 추위에 화청지에서 목욕함을 허락하여
溫泉水滑洗凝脂 매끄러운 온천물에 기름진 때를 씻으니
侍兒扶起嬌無力 시녀들 부축하여 일어나니 아름다움에 당할 힘이 없도다.
始是新承恩澤時 그 때부터 황제 사랑 받기 시작하였네
雲?花顔金步搖 구름같은 귀밑머리, 꽃 같은 얼굴, 흔들거리는 금장식
芙蓉帳暖度春宵 부용휘장 안은 따뜻하여 봄 깊은 밤을 헤아리니
春宵苦短日高起 짧은 밤을 한탄하며 해 높아서 일어나니
從此君王不早朝 이를 좇는 군왕은 이른 조회를 보지 않았고
承歡侍宴無閑暇 총애로 연회에 매이니 한가할 틈 없어
春從春游夜專夜 봄을 좇는 춘정을 즐겨 온밤을 지새우니
後宮佳麗三千人 빼어난 후궁에 미녀 삼천 있었지만
三千寵愛在一身 삼천의 총애가 그녀에 있으니
金屋粧成嬌侍夜 금 같은 방 단장하고 교태로 밤 시중들어
玉樓宴罷醉和春 옥루 잔치 끝나면 춘정을 이루니
姉妹弟兄皆列士 자매와 형제 모두가 열사라.
可憐光彩生門戶 예쁘게 여기 가문에 광채가 나니
遂令天下父母心 이로 하여금 세상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
不重生男重生女 아들보다 딸 낳기를 중히 여기도다.
驪宮高處入靑雲 화청궁 높이 솟아 구름속에 들어 있고
仙樂風飄處處聞 신선의 풍악은 바람 타고 어디서나 들려오네
緩歌慢舞凝絲竹 느린 노래 오만한 춤이 비단결과 피리에 맺히니
盡日君王看不足 군왕은 종일 넋 잃고 보아도 부족하도다.
漁陽?鼓動地來 돌연 어양 쪽 땅을 울리는 악관의 북소리 들려오니
驚破霓裳羽衣曲 예상우의곡에 깜짝 놀라도다.
九重城闕煙塵生 구중궁궐에 연기 먼지 솟아오르고
千乘萬騎西南行 수천수만 관군들은 서남으로 가고
翠華搖搖行復止 천자의 기 흔들리며 가다가 서곤 하며
西出都門百餘里 도성문 서쪽 백여리 마외역에는
六軍不發無奈何 육군을 보내지 못해 어찌 할 수 없어
宛轉蛾眉馬前死 미인의 긴 눈썹이 구부러지며 굴러 군마 앞에 죽었네
花鈿委地無人收 땅에 떨 군 꽃비녀 거두는 사람 없고
翠翹金雀玉搔頭 취교, 금작, 옥소두 땅에 흩어졌네
君王掩面救不得 군왕은 얼굴 가린 채 구하지 못하고
回看血淚相和流 차마 돌린 두 눈에 피눈물이 흐르네
黃埃散漫風蕭索 누런 흙먼지 일고 바람 쓸쓸히 부는데
雲棧?紆登劍閣 구름 걸린 굽은 잔도 검각산을 오르네
峨嵋山下少人行 아미산 아래에는 오가는 이도 드물어
旌旗無光日色薄 천자 깃발 빛을 잃고 햇빛도 희미하네
蜀江水碧蜀山靑 촉강 맑게 흐르고 촉산은 푸르건만
聖主朝朝暮暮情 황제는 아침저녁 양귀비 생각에 잠겨
行宮見月傷心色 행궁에서 보는 달에 마음 절로 상하고
夜雨聞鈴腸斷聲 밤비에 들리는 방울소리는 애간장 끊어지는 소리요
天旋地轉回龍馭 천하 정세 변하여 황제 돌아오는 길에
到此躊躇不能去 마외역에 이르러는 걸음 뗄 수 없었네
馬嵬坡下泥土中 말 높은 고래아래 진흙더미 속에는
不見玉顔空死處 고운 얼굴 어디 가고 죽은 자리만 남아
君臣相顧盡沾衣 임금 신하 서로 보며 눈물 옷깃 적시네
東望都門信馬歸 동쪽 도성문 향해 말에 길을 맡겨 가니
歸來池苑皆依舊 돌아와 본 황궁의 정원은 변함 없어
太液芙蓉未央柳 태액지의 부용도 미양궁의 버들도
芙蓉如面柳如眉 부용은 양귀비 얼굴 버들은 눈썹
對此如何不淚垂 이들을 대하고 어찌 아니 눈물 드리우리
春風桃李花開日 봄바람에 복숭아며 살구꽃이 만발하고
秋雨梧桐葉落時 가을비에 젖어 오동잎이 떨어져도
西宮南內多秋草 서궁과 남원에 가을 풀 우거지고
落葉滿階紅不掃 낙엽이 섬돌을 덮어도 쓸지 않으니
梨園子弟白發新 이원의 자제들은 백발이 성성하고
椒房阿監靑娥老 양귀비 시중들던 시녀들도 늙었네
夕殿螢飛思?然 반딧불 나는 저녁 궁궐 더욱 처량하여
孤燈挑盡未成眠 등불 심지 다 타도록 외로이 잠 못 드니
遲遲鍾鼓初長夜 더딘 종과 북소리에 밤이 길다는 것을 알았네
耿耿星河欲曙天 은하수 반짝이며 새벽은 다가오고
鴛鴦瓦冷霜華重 원앙같이 금슬좋은 기와는 차고 서리꽃이 심해지나
翡翠衾寒誰與共 함께 덮을 이 없는 싸늘한 비취금침
悠悠生死別經年 생사를 달리한 지 아득하니 몇 년인가
魂魄不曾來入夢 꿈속에 혼백마저 만나볼 수 없네
臨?道士鴻都客 임공의 도인이 도성에서 머무는데
能以精誠致魂魄 정성으로 혼백을 불러올 수 있다하니
爲感君王輾轉思 양귀비 그려 잠 못 드는 군왕을 위해
遂敎方士殷勤覓 방사시켜 양귀비 혼백 찾게 하였네
排空馭氣奔如電 허공을 가르고 번개처럼 내달아
升天入地求之遍 하늘 끝에서 땅 속까지 두루 찾아
上窮碧落下黃泉 위로는 벽락 아래로는 황천까지
兩處茫茫皆不見 두 곳 모두 망망할 뿐 찾을 길이 없는데
忽聞海上有仙山 홀연 들리는 소문 "바다 위에 선산 있어
山在虛無??間 그 산은 아득한 허공 먼 곳에 있고,
樓閣玲瓏五雲起 누각은 영롱하고 오색 구름이 일어
其中綽約多仙子 그 곳에 아름다운 선녀들이 사는데,
中有一人字玉眞 그 중 옥진이라 하는 선녀 하나 있으니
雪膚花貌參差是 눈같은 피부와 고운 얼굴 그인 것 같다"하네
金闕西廂叩玉? 황금 대궐 서쪽 방의 옥문을 두드리고
轉敎小玉報雙成 소옥시켜 쌍성에게 알리도록 말 전하니
聞道漢家天子使 한황제의 사자가 왔다는 말 전해 듣고
九華帳里夢魂驚 꿈에 깨어 놀라는 화려한 장막 안의 혼백
攬衣推枕起徘徊 옷을 들고 베개 밀고 일어나 서성이더니
珠箔銀屛??開 길게 이어진 구슬발과 은병풍 열리니
雲?半偏新睡覺 구름 같은 머리 한쪽으로 드리우고 막 잠에 깬 듯
花冠不整下堂來 머리장식 안 고친 채 당에서 내려오네.
風吹仙袂飄飄擧 바람 부는 대로 소맷자락 나부끼니
猶似霓裳羽衣舞 예상우의무를 추던 그 모습인 듯
玉容寂寞淚欄干 옥 같은 얼굴 수심 젖어 눈물이 난간에 흐르니
梨花一枝春帶雨 활짝 핀 배꽃 한 가지 봄비에 젖은 듯 하구나
含情凝?謝君王 정어린 눈길 돌려 군왕에게 사뢰니
一別音容兩渺茫헤어진 뒤 옥음, 용안 듣고 뵙지 못하여
昭陽殿里恩愛絶 소양전에서 받던 은총도 끊어지고
蓬萊宮中日月長 봉래궁에서 보낸 세월이 오래건만
回頭下望人?處 머리 돌려 저 아래 인간세상 보아도
不見長安見塵霧 장안은 보이지 않고 짙은 안개와 먼지 뿐
唯將舊物表深情 장차오래 지닐 물건으로 깊은 정을 표하려니
鈿合金釵寄將去 자개 상자와 금비녀를 가지고 가라하네
釵留一股合一扇 비녀는 반 쪽씩 상자는 한 쪽씩
釵擘黃金合分鈿 황금 비녀 토막내고 자개 상자 나눴으니
但敎心似金鈿堅 두 마음 이처럼 굳고 변치 않는다면
天上人間會相見 천상에든 세상에든 다시 보게 되리라네
臨別殷勤重寄詞 헤어질 즈음 간곡히 다시 하는 말이
詞中有誓兩心知 두 마음 만이 아는 맹세의 말 있었으니
七月七日長生殿 칠월 칠일 장생전에
夜半無人私語時 인적 없는 깊은 밤 속삭이던 말
在天願作比翼鳥 하늘을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 땅에 나무로 나면 연리지가 되자고
天長地久有時盡 천지 영원하다 해도 다할 때가 있겠지만
此恨綿綿無絶期 이 슬픈 사랑의 한 끊일 때가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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