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에서 고국을 방문한 가인 죽마고우함께
경주시내와 첨성대
경주시내에 흐드러지게 핀 벗꽃
경주시내의 벗꽃과 유채꽃
눈부시게 화려하여 경주시내가 꽃경주가 되였다
경주첨성대 (慶州瞻星臺)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천문관측대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술병모양의
원통부(圓筒部)가 올려지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가 얹혀진 모습이다.
원통부는 부채꼴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해
내부는 돌의 뒷뿌리가 삐죽삐죽 나와 벽면이 고르지 않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자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있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적당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하였는데,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占星術)이 고대국가에서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찍부터 국가의 큰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는 첨성대 건립의 좋은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며 현재 동북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긴 하나 거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