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에서 고국을 방문한 가인 죽마고우함께
장릉 [莊陵] 탐방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산133-1번지에
있는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무덤이다.
단종이 묻혀 있는 장릉.
사약을 받은 뒤 며칠 간 떠돌던 단종의 주검을 지방관리 엄흥도가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을 무릅쓰고 몰래 수습해 모셨다.
단종 폐위를 둘러싼 사화로 처형된 268명의 이름이 능 아래 장판옥 안 위패에 새겨 있다.
두견새우는 청령포
이만진 작사/한복남 작곡/최영주노래
왕관을 벗어놓고 영월땅이 웬 말이냐
두견새 벗을 삼고 슬픈 노래 부르며
한양천리 바라보고 원한으로 삼 년 세월
아~ 애달픈 어린 임금 장릉에 잠 들었네
두견새 구슬프게 지저귀는 청령포야
치솟은 기암절벽 굽이치는 물결은
말해다오 그 옛날의 단종대왕 귀양살이
아~ 오백년 그 역사에 비각만 남아 있네
동강물 맑은 곳에 비춰주는 달을 보고
님 가신 뒤를 따라 꽃과 같이 사라진
아름다운 궁녀들의 그 절개가 장하구나
아~ 낙화암 절벽에는 진달래만 피고 지네
조선 제6대 왕 단종(端宗 1441~1457, 재위 1452∼1455)의
무덤으로,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6호로 지정되었다.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에서 죽음을 당한 후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은
영월의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가
몰래 수습하여 동을지산 자락에 암장하였다.
조선 제 6대 임금 단종의 능이 있는 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으로 제향시 제물을 차리는
정자각과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264인의 위패를 모신 배신단사 등이 있다
암매장한 곳에 조성된 장릉
대부분의 왕릉은 도읍지에서 100리 이내에 있는 게 정석이다.
임금이 능행에 나섰다가 국가에 변고가
생겼을 경우 하루 안에 대궐로 돌아갈 수 있는 거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릉은 한양에서 500리도 더 떨어져 있다.
다른 능은 약간 언덕이 진
구릉에 자리하는 데 반해 장릉은 해발 270m 높이에 있다.
여기 장릉의 자리는 단종 임금을 몰래
암매장한 곳에 그대로 조성되다 보니 까까비탈 위에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단종 묘의 위치조차 알 수 없다가
1541년(중종 36)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내어 묘역을 정비하였고,
1580년(선조 13)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 등을 세웠다.
1681년(숙종 7) 단종은 노산대군(魯山大君)으로 추봉되고,
1698년(숙종 24) 11월 단종으로 추복되었으며, 능호는 장릉(莊陵)으로 정해졌다.
단종이 죽게 된 동기 3가지
1.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이다.
세조가 왕위에 오르고 단종은 왕위에서 물러나 창덕궁에서 지내게 된다.
2.이후 사육신의 난으로 알려진 병자옥사가 일어난다.
단종 복위를 꾀하다 거사도 일으켜보지 못하고
주모자들이 죽임을 당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돼 영월로 쫓겨난다.
3. 또 다른 숙부인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 발각되자
단종은 17세에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한 뒤 시신마저 강에 버려지게 된다.
이때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사람은 엄홍도다.
장릉은 엄홍도가
자신의 선산에 단종의 시신을 몰래 묻어둔 자리인것이다.
단종 [端宗, 1441~1457] 향년17세
조선 제6대 왕(재위 1452∼1455).
단종비 정순왕후 [定順王后, 1440~1521] 향년 82세.
돈령부판사(敦寧府判事) 송현수(宋玹壽)의 딸
남편단종이 1457년 17살에 죽었으나 부인은 1521년까지 82살로 죽었다.
묘는 사릉(思陵)(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산65-1.)
단종의 아버지. 문종 [文宗, 1414~1452] 향년 39세 (아들 단종이12살 때 죽음)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顯德王后, 1418~1441] 향년 24(아들 단종을 낳고 바로 죽었다)
장릉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석물 또한 단출하다.
봉분 앞에 상석이 있고,
상석 좌우에 망주석 1쌍이 서 있으며,
그 아랫단에 사각형 장명등과
문인석·석마(石馬) 각 1쌍이 있으나 무인석은 없다.
묘가 조성된 언덕 아래쪽에는 단종을 위해
순절한 충신을 비롯한 264인의 위패를 모신 배식단사(配食壇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의 정려비,
묘를 찾아낸 박충원의 행적을 새긴 낙촌기적비,
정자각·홍살문·재실·정자(배견정 拜鵑亭) 등이 있다.
왕릉에 사당·정려비·기적비·
정자 등이 있는 곳은 장릉뿐인데
이는 모두 왕위를 빼앗기고 죽음을 맞은 단종과 관련된 것들이다.
대부분의 조선왕릉군이 서울, 경기 일원 평지에 있는데 반해,
거리가 먼 강원 영월의 언덕배기 위에 외롭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무신상이나 석호 등이 없는 점은
조선왕실의 법도에 따라 모셔진 다른 왕릉들과는
달리 유배라는 특수상황에서 조성됐음을 쉽게 짐작케 한다.
특히 능 주위를 둘러싼 울창한 소나무들이
마치 봉분 속에 잠들어 있는 단종에게 절을 하듯 틀어져 있어 신비함을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