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든 명랑공주
사진제목:
꽃을 든 명랑공주
모델, 명랑공주
촬영, 큰아빠 Cleancut
장소, 서울낙성대 정원
카메라, PENTAX K200D
편집 , 할아버지 유유자적
낙성대(落星垈)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장군 강감찬(姜邯贊)의 출생지.
지정번호 서울유형문화재 제4호
지정연도 1972년 5월 25일
소장/소재지 서울 관악구 봉천7동 228번지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다. 고려시대의 명장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이다. 강감찬 장군은 거란의 침략을 막아내는 데 큰 공을 세우는 등 구국제민(救國濟民)을 위해 일생을 바쳐 백성들의 흠모와 존경을 받았다.
백성들은 장군의 공적을 찬양하기 위해 장군의 집터에 사리탑(舍利塔) 방식의 삼층석탑을 세웠다.
그리고 장군이 태어나던 날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졌다는 전설에 따라 '별이 떨어진 터'라는 뜻의 낙성대라 이름하였다. 화강암으로 된 삼층석탑은 13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4.48m이다.
서울특별시에서는 낙성대를 보호하기 위해 1964년 석탑이 파손된 부분을 보수하였다. 유형문화재로 지정한 뒤 1973년 11월부터 안국사라는 사당과 부속건물을 신축하고 관악구 봉천동 218번지에 있던 삼층석탑을 이전하였다.
또 녹지와 공원시설을 갖추어 1974년 6월 10일 지금의 낙성대가 조성되었다.
안국사는 공원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삼층석탑이 있던 옛터에 따로 유허비(遺墟碑)를 세워 사적지임을 표시하고, 1974년 8월 21일 낙성대유지(落星垈遺址)라 하여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하였다.
낙성대 안국사 경내에서는 1988년부터 강감찬 장군의 호국정신과 위업을 기리는 추모제향으로 낙성대인헌제가 매년 10월 경에 열린다.
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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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잡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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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명랑공주
꽃을든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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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姜邯贊, 948~1031]
고려시대의 명장.
거란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을 때 서북면행영도통사로 상원수(上元帥)가 되어 흥화진(興化鎭)에서 적을 무찔렀으며 달아나는 적을 귀주에서 크게 격파하였다.
본관 금주
별칭 초명 은천, 추충협모안국공신
주요저서 《낙도교거집》 《구선집》 등
본관 금주(衿州:서울 관악구 봉천동), 초명 은천(殷川). 983년(성종 2)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부시랑이 되었다.
1010년(현종 1) 거란의 성종이 40만 대군으로 침입하자, 조신(朝臣)들은 항복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이를 반대하고 하공진(河拱辰)으로 하여금 적을 설득하여 물러가게 하였다.
그 뒤 한림학사·승지·중추원사(中樞院使)·이부상서·서경유수·내사시랑평장사를 역임하였다.
1018년 거란의 소배압(蕭排押)이 10만 대군으로 침입해 오자 이듬해 서북면행영도통사로 상원수(上元帥)가 되어 군사 20만 8000명을 이끌고 흥화진(興化鎭)에서 적을 무찔렀다.
그 위에 쫓겨가는 적을 귀주에서 크게 격파하고 개선할 때 영파역(迎波驛)에서 왕의 영접을 받았으며, 검교태위(檢校太尉) 문하시랑동내사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內史門下平章事) 천수현개국남(天水縣開國男) 식읍 3백호에 봉해지고 추충협모안국공신(推忠協謀安國功臣)의 호를 받았다.
그 이듬해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났다가 1030년 왕에게 청하여 성을 쌓고 문하시중이 되었으며, 이듬해 특진검교태사시중 천수군개국후(天水郡開國侯)에 봉해졌다. 현종 묘정(廟庭)에 배향, 수태사 겸 중서령에 추증되었다.
저서에 《낙도교거집(樂道郊居集)》 《구선집(求善集)》 등이 있다.
-두산백과사전-
강감찬설화 [姜邯贊說話]
문헌설화는 《고려사》 열전, 《세종실록》 지리지, 《용재총화》 《동국여지승람》 《해동이적(海東異蹟)》 등에 전하며, 구전설화는 전국 각지에 널리 전승된다.
그의 출생에 관한 설화는 다음과 같다.
어느날 밤 어떤 사신이 길을 가다가 큰 별이 어느 집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찾아갔더니 그 집 부인이 아기를 낳았는데 그가 곧 강감찬이었으며,
후에 중국 송(宋)나라 사신이 와서 만나보고는 강감찬이 문곡성(文曲星)의 화신임을 확인했다는 이야기이다.
바로 낙성대(落星臺) 설화로서 《세종실록》과 《동국여지승람》에 실려 있다. 대부분의 구전설화는 좋은 태몽을 꾼 강감찬의 아버지가 훌륭한 아들을 낳기 위해 노력한 끝에 여우 여인과 관계를 맺고 낳은 것이 강감찬이라고 한다.
성장시 일화 중 대표적인 것은 곰보가 된 것과 귀신을 물리친 일이다. 강감찬은 원래 얼굴이 잘생겼기 때문에 큰일을 할 수 없다고 하여, 마마신을 불러 얼굴을 얽게 하여 추남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어느 혼인식에 참석하여, 사람으로 둔갑해서 신랑행세를 하는 귀신을 물리침으로써 그의 비범함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감찬이 한성판윤으로 부임했을 때, 삼각산에 사는 늙은 호랑이가 중으로 변신하여 많은 사람을 해친다는 말을 듣고 편지로 호랑이를 불러 크게 꾸짖고는 다른 산에 가서 살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밖에도 그의 이인적인 여러 이야기가 전하는데, 이런 설화들은 도가(道家)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도가가 우리 생활에 깊숙이 관여했음을 알려준다.
-두산백과사전-
어서 오십시요!
추억의 가족사진
카리스마 손자
카리스마 생후 7개월때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