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주도

제주-2(성산일출봉)


밤늦게 도착해서1박한 성산 아일랜드 팬숀

성산시 수산동 3988-3번지



아침일찍산책중인 할아버지를 찾아나선 신통방통



할아버지와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신통방통

조용한 초원에 위치해있어 공기가 맑고 좋았다

작은아들 내외, 덕분에 좋은여행을 하였다.




식사는 성산일출봉에서 하기로 하고

떠나기 전에 기념사진




팬션앞에 주차시킨 3박4일간 우리의 발이 되여줄 뉴카니발

지역번호가 01 서울번호다

[전국 지역별 자동차번호 ]


서울: 01~16
부산: 17~20
대구: 21~24
인천: 25~28
광주: 29~30
대전: 31~32
울산: ---33
경기: 34~49
강원: 50~51
충북: 52~53
충남: 54~56
전북: 57~58
전남: 59~60
경북: 61~64
경남: 65~68
제주:--- 69


자동차 번호판

자가용 자동차 -

전국번호판을 단다.


사업용 자동차(버스, 택시,렌트카) -

기존의 지역이 들어간 번호방식 그대로 사용한다..

렌트카 -

소유권은 전적으로 렌트사가 가지게 되며 이용자는 사용만 하게 되며 01 허 5615 같은 형태로 자가 들어간 넘버를 단다.



리스카

리스차량은 렌트카의 "허"자가 아닌 일반 자동차 번호를 단다.따라서 일반인들의 눈에 임대차량인지 알수가 없다.
리스차량은 리스사의 명의를 임대하여 쓰지만 차량의 실소유주는 리스 이용자이다.




팬숀앞마당에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성산일출봉이다

팬션이 있는 곳에는 잠자리가 많이 날라다닌다.



성산일출봉 입구

입장해서 입구를 내려다보고 찍은 사진

12방향에 빨강지붕이 매표소

65세 이상은 무료입장



성산일출봉 올라가는길



성산일출봉에서



성산일출봉 잔디밭에서 바다가를 배경으로

햇빛으로 눈이 부셔 명랑공주는 아예 챙으로 눈을 다 가렸다



성산일출봉 [城山日出峰] 올라가는길

위치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높이 182m. 제주특별자치도 동쪽에 돌출한 성산반도 끝머리에 있는 화산이다. 3면이 깎아지른 듯한 해식애를 이루며, 분화구 위는 99개의 바위 봉우리가 빙 둘러 서 있다.


그 모습이 거대한 성과 같다 하여 성산이라 하며, 해돋이가 유명하여 일출봉이라고 한다. 2.64km2의 넓은 분화구 안에는 풀밭이 펼쳐져 커다란 원형 경기장을 방불케 한다.

본래는 육지와 떨어진 섬이었으나 너비 500m 정도의 사주가 1.5km에 걸쳐 발달하여 일출봉과 제주특별자치도를 이어 놓았다.

매표소에서 전망대까지는 걸어서 25분 걸리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해돋이 광경은 예로부터 영주(瀛州)10경의 하나로 꼽혀왔다.

1976년에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36호로 지정·보호되고 있으며, 현재 군에서 유료관광지로 공개하고 있다.



성산일출봉 [城山日出峰]

이 풀밭은 예로부터 성산리 주민들의 연료 및 초가지붕을 이는 띠의 채초지(採草地)와 방목지(放牧地)로 쓰여져 왔기 때문에 나무는 거의 없고 억새·띠 등의 식물군락을 이루고 있다.





입구에 있는 안내판


성산일출봉 관람을 마치고 내려가는길!

저멀리 입구에 우리가족이 보인다




65세 이상이면 거의가 무료이다



늦은 아침으로 오조 해녀의 집에서 전복죽을 먹기로 했다.

작은며느리가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은 유명한 맛집





전복죽에 딸려나오는 반찬들!

성산일출봉 근처이고 성산일출봉이 바라다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겸사겸사 이 식당을 들린다고 한다.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전복을 가지고 음식을 만든다고 하던데,

마을 어촌계에서 공동 운영한다고 한다.



전복죽 맛은?? 글쎄..

제주도 여행기념으로 한번 시식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모양은 녹두죽과 비스므리 하다.



오조해녀의 집 식당앞에서 바라다 보이는 성산일출봉



전복죽 식사후 기념으로!


오조 해녀의 집에서 식사를 한후 성읍민속마을로 향할것이다

서귀포 칠십리

바닷물이 철석 철석 파도 치는 서귀포
진주 캐는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휘파람도 그리워라 콧노래도 그리워
서귀포 칠십리에 황혼이 온다

흰비늘이 반짝반짝 물에 뜨는 서귀포
미역따는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은조개도 그리워라 물파래도 그리워
서귀포 칠십리에 물안개 졌네

    서귀포칠십리의 유래


    서귀포칠십리'가 국내에 널리 알려진 직접적인 동기는 1938년에 조명암씨에 의해 「서귀포칠십리」가 노랫말이 지어졌고, 박시춘 작곡, 남인수의 노래로 불려지면서 부터입니다.

    당시 일제치하에 억눌려 살았던 국민들에게 끝없는 향수와 애틋한 그리움을 이끌어 내면서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서귀포칠십리'의 사실기록은 1416년(이조시대 태종16년) 안무사 오식에 의해 제주도 행정구역이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으로 나누어 지게 되었으며, 1423년(세종 5년) 안무사 정간에 의해 정의현청(고성)이 현재의 표선면 성읍마을로 옮겨지면서 70리의 거리적 개념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1653년 제주목사 이원진에 의해 발간된 『탐라지』에 의하면, 서귀포는 정의현청에서부터 서쪽 70리에 있으며, 원나라에 조공을 바칠 때 순풍을 기다리던 후풍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서귀포칠십리가 처음에는 정의현청이 있었던 현재의 성읍마을에서 서귀포구까지 거리를 알려주는 개념이었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서귀포칠십리가 단순한 '거리개념'이 아니라, 제주도민의 마음속에 언제나 안식과 위로, 그리고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이어도'처럼, '서귀포칠십리'라는 의미 그 자체가 서귀포시민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영원한 이상향이자, 서귀포의 아름다움과 신비경을 대변하는 고유명사로 자리잡혀 왔슴니다.

    이를테면, 서귀포칠십리는 '서귀포의 뿌리와 정서, 이미지'를 함축한 발전된 개념으로 정착되어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고향'으로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제주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11(영상집합)  (0) 2008.08.05
제주-10(도깨비도로)  (1) 2008.08.04
제주-9(천지연.협재)  (0) 2008.08.04
제주-8(절리대.잠수함)  (0) 2008.08.04
제주-7(세계여행)  (0) 2008.08.03
제주-6(테디베어.천제연)  (2) 2008.08.03
제주-5(정방폭포)  (0) 2008.08.03
제주-4(섭지코지)  (0) 2008.08.03
제주-3(성읍민속마을)  (1) 2008.08.03
제주-1(용두암)  (1) 2008.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