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4.추모여행기

만정도화(滿庭桃花) 2007. 8. 16. 10:18



계림 여행기


(이제 다시는 뵙지못할형님과 함께 즐거웠던 그때를 회상하며 추모여행기를 올린다)


1.첫째날 2002.3.3.일요일



형님과 함께 행복했던 시절


예년보다 따듯한 날씨지만 아직은 쌀쌀한 날씨! 우리나라보다 훨씬 남쪽에 위치하여 옷을 서울보다 한꺼풀 벗고 가도 된다고하여 내복도 모두다 벗고 바지도 여름바지를 준비하여 간단한 가방 하나만을 들고 형수님 돌아가시고 적적해 하시는 형님을 모시고 중국 광서성 계림 여행길에 올랐다.

10시 정각 분당 서현역을 출발한 공항행 버스엔 승객이 가득했다. 12,000원 요금 선불, 경부 고속도로 올림픽도로 거쳐 인천공항 까지 직행, 11시 15분 신공항 동편 맨끝 K-L 출입구 도착, 소요시간 1시간 15분.

인천공항은 넓고 깨끗했다. 개발중인 주위환경이 조금은 삭막하고 어수선했지만 싱가폴의 창이공항 일본의 나리다공항을 보며 부러워 했던 마음이 한결 씻겨지는 으쓱한 기분.


12시 20분까지 모이라는 인상좋은 롯데관광 인솔자 김혜정(016-733-0805)양의 당부 시간보다 1시간이상 여유시간이 있었다.

배웅나온 승일내외,석화 수빈. 그리고 업무상 동행 못하는 작은아들과 함께 넓은 공항에서 사진도 찍고 여유시간을 즐겁게 보내 시간은 지루 하지 않았다. 승진이 내외는 미국유학중이라 참석하지 못했다.

아이고, 놀래라 사건 1.


넓고 넓은 인천국제공항! 이리저리 뛰여 놀던 홍석화가 언제부터인가 행방불명이되였다. 아범,어멈은 깜짝놀라 얼굴이 완전히 사색!
넓은 공항을 가족모두 석화를 찾아다니느라 한바탕 소동끝에 찾았으니, 아이고 ~ 놀래라! 홍석화 ! 또 멀리 갈거야..

14시30분 이륙한 비행기는 3시간 30분후 17시경(서울보다 1시간 늦음) 계림공항에 착륙했다. 더웁다던 날씨는 서울과 비슷하게 추운지라 덜덜 떨리는 기분! 내복을 준비해 갈것을! 이그 추워라! 자그마하고 깨끗해 보이는 시골 비행장.

우리일행 15명(우리일행 5명과 재경 경북여고 동창들이라고 하는 50대초반 여성 10명)을 태운 25인승 미니버스는 깨끗한편이었고, 좀 왜소한듯한 보통키의 밀양박씨 박길범이라고 소개하는 30대 중반쯤의 조선족 안내를 받으며 계림시로 향했다.

광서 장족자치구 북동부에 위치하고 이강에 면한 계림시는 진귀한 모양을 이루고 있는 많은 봉우리들로 둘러 쌓여 있고,
계수나무가 많아 계수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곳이라는 뜻에서 계림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빼어난 풍치로 예로부터 시인과 화가들의 글과 그림의 소재가 되어오던 곳이다.

그런 까닭으로 계림산수갑천하(桂林山水甲天下)

즉 계림의 산수는 천하제일이다. 라는 명성이 있을 정도로 계림은 중국에서도 유명한 관광지중의 하나로 각광을 받아 왔다며 쉬지않고 연속방송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광서성의 계림은 수려한 산수와 아열대기후가 어우러져 정말로 별천지 같았다.

이붕 총리가 다녀간 뒤에 중앙정부의 특별예산으로 지어졌다는 계림공항은 지붕모양이 산처럼 설계되어 있었다.


실제로 보지는 못하였으나 공항광장에는 물고기 모양도 만들어 놓았단다. 3억년쯤 전에 지각운동으로 바다 밑의 석회암이 솟아올라 생겼다는 산들은 TV에서 본 금강산 같았다.

소수민족이 많은 중에도 특히 장족(좡족)이 많이살아 연변의 조선족자치주처럼 장족자치주로 되어 있단다.


아닌게 아니라, 주민들을 보니 영화 "킬링필드"의 사람들처럼 체구가 작고 피부색도 북경이나 서안의 사람들과 완연히 달랐다.

베트남과의 국경이 400km 밖에 안된다니 이해가 갈 만도 하였다. 계림시내로 들어서니 허름하던 모습에서 깔끔한 관광도시로 급변하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계림의 지형은 카르스트 지형으로서 지각변동으로 인해 해저가 지형적으로 돌출하여 지금과 같은 기암괴석이 특이하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런 기묘한 형태의 지형은 각종 영화의 배경장소로도 이용되었는데,중국 배우 이연걸이 주연한 소림사(少林寺)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그 아름다운 뒷배경도 계림을 무대로 한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중국 여행에서 계림을 제외한다면 참다운 여행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로 이곳은 반드시 거쳐가야 할 곳이라고 일장훈시.


계림의 기후는 아열대 기후에 속하며 연평균 기온 이 18.8℃에 있을 정도로 따뜻한 곳이다.
여행하기에 가장 알맞은 계절은 10월에서 4월까지인데, 이 기간 중에는 쾌적하고 맑은 날이 많기 때문에 계림의 풍치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이전에는 12∼2월까지는 이강의 수심이 낮아지기 때문에 제대로 구경을 할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상류에 댐이 만들어진 후 부터는 언제든지 뱃놀이를 할 수 있다.

총면적은 2,000㎢ 정도 되며 인구는 약 40만명(60만명?) 정도 된다고 한다.

현지 조선족 안내인은 아주 열심히 우리일행들을 위해 계림을 계속 소개하기 시작했다. 중국 관광지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고 했다.

1. 계속 걷는 북경관광 다리 아파 다리병(걷는관광)
2. 역사 듣기 서안관광 하도들어 귓병(듣는 관광)
3. 경치구경 계림, 눈이 부셔 눈병.(보는 관광)

실제로 북경에 가보니 넓디 넓은 천안문 광장 하며 자금성 구경하고 나니 발이 아파 녹초가 되었었다.

12억 인구에 8억대의 자전거 들끓는 중국, 다시한번 계림을 소개하는데,

3억2천5백년의 지령을 지닌채 바다로 덮혀있던 계림지역은 약 1억년전 융기하였으며 당계, 금계, 은계등 계수나무가 많아 계림이라는 이름이 붙혀졌다고했다.

실제로 계림지역은 모두 가로수가 계수나무로 영하로 온도가 내려가지않는 관계로 푸른 계수나무가 아주 멋있어 보였다.

36,000여개의 산봉우리,12,000여의 동굴을 지닌 계림은 산맥이 베트남으로 까지 연결되어있다고했다. 완전히 동굴 천국! 신선이 된 기분!

비행장에서 시내 까지는 비교적 포장이 잘되있었으며, 차창으로는 평지에서 갑자기 솟은듯 묘하게 마치 팽이를 거꾸로 엎어 놓은 것 같은 볼룩볼룩한 산봉우리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잎이 반짝이는 계수나무 가로수들, 농사가 주업인듯 여기저기 질펀한 논들, 인구 60여만의 계림은 이강의 오염 때문에 8층이상의 아파트와 공장설립을 허용치않는다고했다.

공항에서 30여분후 계림시내에 닿자 마자 안내인은 칠성공원부터 안내했다.
봉우리 7개가 북두칠성의 형국을 하고있어 칠성공원이라는 이곳에는 작은 규모의 동물원과 미국 대통령 클린턴이 대학생들과 토론회를 갖었었다는 야외 공연장이 있었을뿐 별로 볼것이 없었다.

계림시에서 별이 다섯 개라는 쉐라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식사를 마친다음 계림시내의 야경을 보면서 드라이브를 하였는데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형형색색의 가로등이며 멋있는 아치등이 아주 깨끗하였고 도로 보행자 신호등도 시간이 숫자로 표시되는등 어느면에서 우리보다 한걸음 앞선 기분도 들었다.

네온으로 화려하게 치장해놓은 상비산과 가마우지쇼를 보기 위해 이강의 작은 유람선에 올랐다.

상비산(象鼻山)


중국인들이 계림에 와서 꼭 찾아보는 곳이 상비산이다. 도화강(桃花江)과 이강이 합류하는 곳에 있는 이 거 한 바위산은 강으로 기어드는 돌산에 굴이 뚫려 있어서 옆에서 보면,


마치 코끼리가 코를 담그고 강물을 들이키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이 산의 정상에는 명나라때 세워진 높이 13.5m의 보현보살탑이 서 있다.

1.이강 물에 코 담근 桂林의 象鼻山아

억겁년 마신 물로 배만 불뚝 커졌구나
온 몸 뒤덥힌 털이 짙푸르러 고웁다.

2. 이강은 천여리, 계림 끼고 십리 길
앞발 두개 뒷발 네개 와와魚 노니는 곳
계림 제일 쥐요리 말만 듣고 으스스.

유람선위에 올라가니 어찌나 강바람이 쎄게 부는지 형님께서는 모자를 쓰고 나올걸 잘못했다고 아쉬워하시고 집사람과 채원어멈은 아예 유람실 실내에서 주로 구경하고, 나중에 선상에 올라와 채원이는 어멈 트리닝으로 완전무장시켜 눈만 나오게하고 이강의 야경을 감상 했다.

이강은 강폭이 꽤 넓은 편이었으며 물이 맑고 유속도 퍽 빠른 편이었다. 등불 밝힌 뗏목 한척이 우리 배를 따르며 고기잡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여주었다.

가마우찌란 새는 오리크기만한 검회색의 오리와 비슷한 새이고, 어두운 강물속에 혜염쳐 물고기를 잡는데 물속에 머리만 박으면 큰 물고기를 입에 물고 나와서는 목으로 삼키지 않고 입속에 담는 습성이 있는데, 이는 잡은 물고기를 새끼에게 갖다 먹이기 위한 본성이라는 것이다.

애쓰고 잡은 물고기를 날강도 같은 사공한테 강도를 당하여 아무리 잡아와도 가마우찌의 입을 사정없이 벌리고는 강탈해가서 모두 뺏기는 신세!
아 ~ 불쌍하고 불쌍하더라!

가마우지쇼


1.이강의 어부는 인정도 없고 동정도 없나
어두운 물속 추위를 무릅쓰고 잡아와도

2. 월척을 잡아와도 아무소용 없구나
이강에는 법도없나 날강도 어부를 그냥두니

3. 대나무 다섯가닥 엮어만든 좁은뗏목
좀 쉴라치면 삿대로 물속으로 떼미네

4. 두줄기 뗏목 불빛 물고기떼 모으는듯
불같은 어부 재촉 슬피 우는 가마우지.

발 맛사지


소년 소녀들이 발을 씻어주며 맛사지를 해 주는데 약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시원하다.
형님께서 아주 좋은 경험하셨다며 즐거워하시는 것을 보고 나도 기뻤다.
한번은 해볼만 관광기념으로 20불 받았다.작년에 북경에서는 15불 이였는데 올랐다.!

둘째날(2002.3/4일.월요일)


아침식사후 이강으로 유람선을 타기 위해 버쓰로 1시간 30분정도 비포장도로를 지나 도착. 선착장까지 걸어서 약 1000메터거리라고 했다.

이강 유람선에서, 작은며느리와 18개월의 명랑공주

아이고, 놀래라 사건 2.
형님. 작은며느리. 그리고 내가 채원이를 업고 걸어가는데 인력거꾼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선착장까지 손님들을 태워다 준다고 하며 타라고 하였다.

특히 보행이 불편한 집사람한테 집중공략을 펴서 할수없이 인력거를 타게했는데 인력거꾼은 우리일행 뒤에서 집사람을 태우고 열심히 뒤쫒아왔는데 한참가다 작은며느리 형미가 뒤를 돌아다 보더니 어머님이 타신 인력거가 안보인다고 사색이 되여있었다.

우리 식구들은 모두 깜짝놀라 이골목 저골목을 아무리 찾아봐도 인력거가 보이질않았다.


야, 이거 큰일 났구나, 중국에서 요즈음 한국사람 납치를 많이 한다던데.. 암만해도 납치당한 것이 틀림없구나.


순간적으로 걱정이 태산이였다. 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 보살 ! 중국와서 마누라 잊어버렸구나 하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오~ 하느님. 불쌍한 우리집사람을 돌려보내 주세요! 교인도 아니건만 나도 몰래 하느님 소리가 나왔다.

겁에 질린 작은며느리 형미!


선착장에 작은며느리가 헐레벌떡 달리기로 먼저 뛰여 갔다. 선착장에 도착해보니
인력거꾼은 이미 지름길로 재 빠르게 달려서 도착해 있었다.


인력거꾼은 집사람을 내려놓고는 담배를 피우며 우리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사람은 나를 보더니 가마타고 편하게 잘~ 왔다고 싱글벙글했다. 아이고 환장하겠네.. 남의 속탔는 줄도 모르고..

인력거비는 단돈 우리돈으로 1000원. 인력거꾼 불쌍도 해라. 그렇게 싼거면 우리 가족 모두 탈걸 그랬다.


이강유람


계림 관광의 절정은 뭐니뭐니해도 이강유람이다. 양제에서 관암까지 약 1시간 40분 정도 유람하는 동안 잠시도 눈을 다른 데로 떼지 못했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옛날 중국 화가가 그린 산수화로 들어가는 느낌이였다. 그러므로 만약 이 관광코스를 놓치고 여행한다면 중국여행의 진면목을 놓치고 마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강 유람은 배를 타자마자 신선의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소와 말이 모여 있는 것 같은 구우령(九牛嶺),


강을 향하여 관(冠) 같은 암동(岩洞)이 입을 벌리고 있는 관암유경(冠岩幽境),

부부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안고 있는 망부석(望夫石),


선명한 색실로 자수를 놓은 것 같은 수산(繡山),

마치 용의 머리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용두산(龍頭山)등


끊임없이 기암절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기암절벽은 파란 하늘이나 안개 낀 신비로운 분위기와 어울려져 유유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속 깊이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이강 유람은 물이 특히 맑은 가을철이 가장 좋다고하지만 사시사철 모든 계절이 다 좋다고 한다. 내가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3월에 와서 좀 추워서 그렇지 괜찮다고 생각되였다.

홍길선 형님께서는 이강 기암절벽의 모습에 감탄사 연발.연발!

이강 유람선 위에서 형님께서 경치를 감탄하시며 즐거워 하시던 모습

최근에는 수심이 얕아지면 상류의 저수지 물을 방류해 배를 띄울 만큼 관광객을 위한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봄에는 햇살이 내비치는 연한 자색 안개 속의 경치가 그림이고, 겨울에는 눈 내리는 강에서 노인이 삿갓을 쓰고 혼자서 낚시를 하는 모습이 한 편의 그림같은 느낌을 준다고 했다.

사실 한번 구경은 좋지만 여기서 평생 살라고 한다면 대답은 글쎄이다.
이강에서 배를 타고 주위산수를 감상한 옛시인의 시를 옮겨본다.

송곳, 주먹, 쌍봉, 단봉, 애기 업은 낭자봉
원숭이 머리, 들소 머리, 하늘 향한 얼굴봉
남근, 여근, 유두, 엄지같은 손가락봉
토끼, 고래, 낙타, 적토마, 울부짖는 사자봉

곰머리, 고리라 얼굴, 깎아지른 탑바위봉
선비, 촌노, 기둥, 장승, 어수룩한 농군봉
소귀, 말구, 고래, 코끼리, 모자 닮은 두건봉
식칼, 고꽹이, 병풍, 버섯, 얼싸 안은 사랑봉

검지, 중지, 약지, 소지, 누워자는 애기봉
어깨 맏댄 쌍부부봉, 애기 어르는 모자봉
이리 봐도 산봉우리 저리봐도 산봉우리
대나무밭 죽순인들 여기 보다 더 많을까

우리 형제는 선상에서 추위를 무릅쓰고 선상에서 신선같은 산수를 계속 감상하였다. (다른 관광객은 추워서 객실로 들어갔지만) 이강 유람을 마치고 바로 옆에있는 관암동굴을 구경하였는데 동굴안에 강이 있어 뱃놀이를 하였다.

산봉우리에서 어느 땅꾼이 큰 뱀을 발견하고 잡으려고 하였으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자세히 보니 어느 작은 구멍으로 뱀이 내려갔다고 하는데 땅꾼이 뱀을 잡을려고 그 구멍을 파내려 가다보니 큰 동굴을 발견하게 되였는데, 그 동굴이 바로 관암동굴이였다고 안내원이 설명하였다.

동굴의 벽면에 조개껍질이 화석상태로 섞인 걸 보니 바다의 밑바닥이 솟아올랐다는 설명이 실감되었다.

모노레일과 조각배를 타고 동굴을 관람하는 순서도 재미있었다. 대만의 자본가가 거금을 투자해 개발하였다는 말을 들으니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투자사업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동굴관광을 마치고 나오니 원주민 노점상들이 물건을 사라며 따라붙었다. 가방, 귤, 장미꽃, 붓, 부채 등을 손에 들고는 집요할 정도로 치근거렸다.

형님에게 붓을 사라며 계속 쫒아오는 아이로 부터 형님은 1만원을 주고 붓을 사셨는데, 처음에는 1갑에 1만원이라고하여 안 산다고 하였더니 나중에는 2갑에 만원 그래도 안산다고 하니 3갑에 1만원만 달라고 졸라 결국에는 1만원 주고 사셧다.
손자녀석 석화가 붓글씨 공부할 때 주시겠다며 사셨다.

冠岩동굴


둘이 타는 모노레일 장난같아 낄낄댄다
말뚝같은 운전대 시끄러운 주행소음
5,6분 달리는 길 관암동굴 어드메뇨
억만년 흐른 물이 일궈놓은 석회동굴

걷고 보며 놀라고 배 타며 또 놀랜다
뱃길 끝 환한광경 깊은 탄성 절로나고
베드로성당 천정화 여기에 비길건가
옥황상제 빚은 솜씨 놀랍고도 놀라워


점심을 마친후 이프로 향하였는데 아스팔트를 한참지나고 나니 좁은 도로를 확장하는등 개발공사가 한참이라 도로는 울퉁불퉁! 소요시간은 약 2시간 30분정도 걸렸을까. 졸면서 와서 잘모르겠다.

승용차는 구경할수 없고 트럭과 버쓰만 가끔 왕래하는 정도 하여간에 도로 확장공사로 도로는 엉망이였다.

이프


이프는 계림에서 자동차로 3시간
36만 모여 사는 이천년 시골도시
열개 소수민족 제법대로 사는 농촌

산봉우리 헤짚어 드러나는 이프평야
토란과 물밤의 고장 농업 종사 80%
풍어암동굴 없었던들 고요할 벽지마을.


이프에 있는 豊魚岩 동굴관광

철판열차 넷씩타고 꼬리 잇는 5분 길
걷는 구경 2킬로 배 타고 3.5킬로미터
선착장 따로있고 배도 한번 갈아탄다

아름드리 석주들 각양각색 종유석
이곳저곳 석순들 깊고 얕은 지하천
세 봉우리 뚫은 동굴 나와보니 또 봉우리.

이프 동굴에서 나올 때 배를 두 번타고 내려서 동굴 안에서 뱃놀이라 즐거웠다.


아이고 놀래라 사건 3.


이프동굴에서 모노네일을 타고 나오는데 모노네일 차는 2인승으로 앞에 탄 사람이 직접 운전을 하게 되어 있었다. 년로하신 형님께서 안타갑게도 뒤에 아무도 타는 사람이 없어 혼자서 타시게 되었다.

생전에 쇠고삐만 잡아당겨 보신 형님께서 홀로 운전을 하시게 되였는데 핸들조작을 하실줄 몰라 바짝 긴장을 하시고는 운전대를 앞으로 바짝 당겼더니 모노레일 차가 쏜살같이 내달려 이러다 내가 죽는구나 하고는 눈을 감으셨다는 것이다.

내가 중국땅에 와서 죽을수는 없다고 다시 정신을 차리시고 천천히 핸들을 눌르니 속도가 줄더라고 내리셔서는 십년감수하셨다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풍어암 온천장에서 저녁식사후,


온천장 숙소 이층광장에 마련된 소수민족 쑈를 보았다. 10개 소수민족중 숫자가 제일 많다는 묘족의 민속쑈

무대 배우가 채원이를 귀여워하고 있다

남녀 배우들이 나와 흥겨운 음악과 춤을 추는데 귀염둥이 우리 손녀 채원이가 배우들이 춤을 추는데로 저도 따라서 같이 춤을 추니 모든 관객들이 아주 쬐끄만 아이가 너무 귀엽워 어쩔줄을 몰라했다.


배우들이 여럿이서 손을 잡고 빙빙 돌아 가면서 춤을 추었는데 채원이를 배우들이 무대에 데려다 같이 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

채원이는 울지도 않고 배우 아찌 언니들과 함께 춤을 추었다. 여행객들이 채원이를 보고 더욱 흥겨워했다. 우리 손녀딸이 인기폭발 홍채원이였다.


무대의 배우언니와 채원이가 기념으로!

세쨋날!(2002.3/5일.화)


아침부터 비가왔다. 계림지방은 일주일에 4-5일은 흐리거나 비가오거나 안개가 많이져서 앞산 바라 볼 수 있는 날이 많지않다고 가이드의 하던말이 실감났다.


중국에서 제일 아름답다던 은자동굴을 옵숀으로 일인당 20불씩 내고 구경하였는데 그야말로 황홀 그 자체였다.

즐거워 하시던 형님의 모습

은좌동굴을 나와서 찍은 사진

오는 도중에 역사가 300년 되었다는 서가 재래시장엘 다녀보았는데 이상한 자동차를 타고 가는데 1.25불줬다. 볼것은 아무것도 없었다.한산하고 별것 없었다.


더군다나 비가 억수로 쏟아져 옷만 적시고.. 우산 한개 샀는데 우리돈으로 2천원.. 싸기는 쌋다. 집사람은 비는 쏟아지고 춥고해서 울상이였다.

요 산


이프 로부터 계림에 돌아와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요산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다. 계림의 유일한 흙산이라는 요산은 군계일학처럼 솟아 있어 정상에서 보이는 경치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36000여 개에 달한다는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사방을 메워 마치 신선이 되어 속세를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봉우리들 사이에는 운무까지 깔려있어 잘 그린 동양화를 앞에 놓고 보는 것 같았다. 가이드에 따르면, 계림은 날씨가 흐린 날이 많아 요산에 올라 경치를 볼수있다는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란다.


리프트를 타고 정상을 왕복할 때 목덜미를 스치던 찬바람이엿지만 경쾌하고 시원함은 실로 압권이었다.

형님과 함께 같이 탔다. 편도 20분씩 40여분을 허공에 매달려 산바람을 쐬던 그 날의 짜릿하고 감미로움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형님은 매우 만족해 하셨다.

요산이 계림에서 제일큰 산이 아니였을까! 내 짐작에 여름이였으면 시원하고 좋왔을걸하고 생각했다. 아주 추었다. 다만 복사꽃이 만발하여 경치는 무릉도원이였다.


산바람에 하도 추워서 형님은 장갑을 이천원주고 사셨다. 경관은 끝내줬다.

요산에서 계림시내를 내려다 보고는 요산에서 내려왔다. 팽이 엎어 놓은것같은 급경사의 계림시내 이강 옆에 있는 복파산에 올랐다. 집사람은 등정포기을 포기했다.

계림시내를 바라보기 좋은 장소이고 이 일대에는 공원으로 조성되여 있고 당나라때 새겨진 230여개의 불상도 있었다.

매우 가파러서 젊은 사람도 숨을 몰아쉬며 맥 못추는데 형님께서는 79세로 연로하신데도 젊은이 못지않게 나보다도 먼저 쉬지도 않고 앞서서 올라가셨다.



계림시내에 있는 복파산 정상에서 찍은사진

복파산은 경사가 가파러서 올라가기 어렵다. 형님은 나보다도 먼저 올라가셨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의 등정, 이름이 산이지 이 또한 팽이를 엎어놓은 산봉우리 같았다.

올라가기 좋게 계단을 훌륭하게 설치해놓아 편리했고 이강옆이라 정상에서의 경관은 끝내주었고 산 아래에는 동굴이 무수히 많고 불상이 천개나 있었다. 그래서 천불암이라나. 아유 힘들어~~ 휴~~

복파산을 내려와서 길가 상점에서 산수그림을 한폭 살려고 물어보니 한국 돈으로 50000원이란다.

내가 비싸다고 손을 저으니 그럼 4만원 내란다. 그래도 비싸다고 하니 3만원 내란다. 작은 며느리 형미가 와서 그래도 비싸다고 하니 여자점원이 2만원만 내란다 .그 이하는 절대 못깍는 단다.

그래도 비싸다고 하며 나와 형미가 돌아 나와 한참을 오는데 뒤에서 여자 점원이 그림을 들고 뛰여오며 에이 일만원내란다.

그래서 내가 5천원에 달라하니 그 중국 여자점원은 화를 내며 그냥 가버렸다. 결국은 안 샀다. 옛날 우리나라 남대문시장 상인들이 생각났다.


저녁을 먹고 소수민족 쑈

극장이 우리가 묵는 쉐라톤호텔 근처라 걸어서갔다. 150여석은 됨직해보였다. 20대로 보이는 청년 남여들이 원색의 전통의상에 크고 작은 대나무 악기를 연주하며 빠른 템포의 무용을 공연하였다.


채원이는 졸음이 오는데도 똑바로 쳐다보느라 애쓰는 모습! 어린 소녀의 허리꺽기 시범은 인간이 뼈가 없는 것 같이 흐물 흐물..


무대 배경그림이 멋있었다. 하여간에 계림은 보기는 멋있으나, 살라고 하면 싫다고 하겠다. 스쳐가며 보는 관광은 최고라고 생각했다.

네쨋날(2002.3/6일.수)


불과 사흘이 지났을 뿐인데도 집 떠난 지가 열흘은 된것같이 느껴졌다. 하기는 3일간을 새벽부터 밤중까지 쉴새 없이 채원이를 업고 산을 오르락 내리락 다녔으니. (나는 평생동안 아이 업어본 적이 없다. 내 아들 승진 승인이 키울때도 업지않았다.)

채원아! 알았지! 할아버지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그러니까 할아버지 보고 냉정하게 홱~ 뿌리치지 말란 말이야.^^ 우리채원이는 재롱부리다가도 제마음에 안들면 홱 뿌리친다.

이제 집에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아침 9시30분 중국 남방항공편.


오늘 계림의 아침은 흐리고 안개많이 낀 그런날 . 훤한 얼굴의 일행들, 기원전을 거슬렀던 역사관광과 상상 초월했던 산수관광을 탈 없이 끝낸 기분 좋은 얼굴들이였다.

아침햇살에 빛나는 산봉우리, 수많은 산봉우리를 차창으로 흘리며 공항으로 달린다.
중국은 먼 옛날부터 우리의 이웃이었다. 정치,경제,사회,문화는 물론 종교적인 면에서도 크나큰 영향을 끼친 이웃이였다.

초등학교때부터 고등학교 까지 배웠던 역사 교과서에서만도 진시황의 분서갱유는 물론 수나라, 당나라등이 등장하고있었고 삼국지,수호지등 흥미를 끌었던 소설들도 중국을 익히는데 한몫 했었다.

그뿐인가 우리가 지금도 쓰고있는 고사성어의 거개가 중국 고대역사에서 유래된것임을 감안할때 중국은 우리의 언어문화에 까지도 커다란 영향을 준 가까운 이웃이었다.

낯설지 않은 나라, 낯설지않은 사람들, 낯설지않은 문화유적을 뒤로하고 비행기는 가볍게 계림공항을 이륙했다.

계림은 한참 개발중! 도로도 넓히고 몇년후면 아주 좋와질걸로 보였다. 중국은 지금 무섭게 발전하고있다. 그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 이번 여행이었다.
계림의 산야가 점점 멀어진다. 3시간30분후 13시 5분경 인천에 도착한다.

〃뭐니뭐니 해도 우리나라 우리집이 최고로구나〃하며 집사람과 함께 분당행 공항버스에 올랐다.


생후 18개월의 귀여운 나의 손녀!


할아버지라고 아직 말을 못하는 채원이의 하부 하부(할아버지)하는 작별의 인사를 뒤로하며 즐거워 하시는 형님과 혜여졌다.

여행기간중에
1. 잠을 자고 침대위에 천원짜리 한 장이나 1달러
2. 발맛사지 20불 (2001년도에 북경에서 15불이였다.)
3.냉장고 안의 생수로 커피한잔 타 마셨다가 생수값 4불50전 지불. 냉장고안의 생 수는 비쌌다.

이세상 제일 거룩하신 연로하신 내 형님께서 즐거워 하시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작은 보람을 느낀다. 우리 형님! 건강하세요! 만수무강하세요 !

글 쓴이 홍충선

이글을 쓰면서 형님이 즐거워하시던그때 모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형님! 보고싶습니다. 그립습니다.


덧글 쓰기

채원사랑(작은며느리 형미):(2002.03/07 )
아버님의 시조 한가락이 여행과 멋스럽게 잘 어울리네요. 운치도 있구요..
아버님 덕분에 정말 값진 여행을 했습니다. 채원이 업고 다니시느라 고생많으셨죠.
감사합니다! ♡♥

작은아들(홍승인) (2002. 03/08)
아버지, 중국 계림여행 돈도 많이 쓰셨고, 고생도 많이 하셨네요. 눈으로 보는 것 같은 명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형미가 어머니,아버님 채원이 돌보시느라 정말 수고가 많으셨다고 하네요. 주말에 뵙겠습니다.



조카며느리:감사드리며..(2002. 03/09)
작은아버님. 부곡 작은 조카며느리입니다.


3박4일간 중국여행을 무사히 다녀오셔서 감사 드립니다.

아버님이 어찌나 실감있게 말씀을 하셨던지 가족 포토방에서 사진을 보면서 이거였구나,


이거였구나 하였답니다. 그 외에도 호텔에서 작은아버님과 옆에서 주무신 얘기,
붓을 마지 못 해사는데 말렸던 얘기.채원이가 무대에 나가 춤을 추었다는 얘기.

작은아버님이 일본사람 만나서 말씀하셨는데 가이드가 놀랬다는 얘기며,
모든 경비를 책임지시고 인솔하셨다는 얘기등등

평소와도 같이 작은아버님 칭찬에 입이 마르셨답니다. 밤새 들어들이지 못해 죄송할 따름이였습니다. 저희가 먼저 해야할 일을 작은아버님이 해주셔서..

그리고 아버님에 대한 작은아버님의 세심한 배려에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