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과 가족들
고종황제
고종황제
고종과 순종
고종황제
노년의 고종황제
고종의 계비인 엄비의 모습
엄황귀비. 명성황후의 상궁으로 있다가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고종황제를 모셨고, 이어 왕자 은(영친왕)을 낳았다. 1906년에
진명여학교를 설립, 한국 근대교육사업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고종의 귀인 양씨모습. 덕혜옹주의 어머니이다.
귀인 양씨(貴人 梁氏) [1882 ~ 1929] 향년 48세
고종의 6번째 후궁
본관 : 충주
아버지 : 양언환
1893년 12세 때 대궐에 입궐
소생 : 1녀 (덕혜옹주)
순종비 16세의 윤비
의친왕비와 이건 황손
의친왕비(義親王妃) [1878 ~ 1964] 향년 87세
본관 : 연안
아버지 : 김사준
1894년 17세 때 의친왕(당시 의화군)과 결혼
소생없음
이건 황손 [1909 ~ 1991] 향년 83세
의친왕(義親王)의 맏아들
수관당 정씨 소생
고종의 친형! 형제 생김새가 비슷하다
이재면(李載冕) [1845 ~ 1912]
1863년 동생 고종(高宗) 즉위 때 '희(熹)'로 개명
아버지 : 흥선대원군 [1820 ~ 1898]
어머니 : 여흥부대부인 민씨 [1818 ~ 1898]
1900년 '완흥군(完興君)' 책봉 56세
1910년 '흥친왕(興親王)' 책봉 66세
소생 : 1남 (준용)
덕혜옹주(德惠翁主) [1912 ~ 1989] 향년 78세
고종(高宗)의 3번째 딸
아버지 : 고종(高宗) 조선 제 26대 왕 [1852 ~ 1918]
어머니 : 귀인 양씨(貴人 梁氏) [1882 ~ 1929]
결혼 : 1931년 20세 때 소 다케유키와 결혼
소생 : 1녀 (소 마사에, 1932년 생)
덕혜옹주 [德惠翁主, 1912.5.25~1989.4.21]
1912년 고종의 고명딸로 태어났다. 1925년 일본으로 끌려가 쓰시마섬 도주의 후예인 다케유키와 강제 결혼하였다. 조발성치매증을 앓았는데 결혼 후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다. 이혼, 딸의 자살 등 비극을 겪었으며 1962년 귀국해서도 순탄치 않은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다.
1912년 5월 25일 조선 제26대 왕(황제) 고종(高宗)과 후궁인 복녕당(福寧堂) 양귀인(梁貴人)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종의 고명딸로, 여섯 살 때인 1917년 정식으로 황적에 입적하였다. 1919년 일제에게 딸을 빼앗기기 싫었던 고종에 의해 황실의 시종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金章漢)과 약혼하였다.
그러나 1925년 4월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시켜야 한다'는 일제의 요구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갔다. 이어 일본의 학습원을 마친 뒤, 1930년 봄부터 몽유증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영친왕(英親王)의 거처로 옮겨 치료를 받았다. 증세는 조발성치매증으로 진단되었고, 이듬해 병세는 좋아졌다.
1931년 5월 쓰시마섬[對馬島] 도주의 후예인 백작 소 다케유키[宗武志]와 강제 결혼해 딸 마사에[正惠]를 낳았다. 그러나 결혼 후에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이후 계속 병상생활을 하다가 1953년 다케유키와 이혼하였다. 하나 있는 딸마저도 결혼에 실패하고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비극을 겪었고, 1962년 1월 26일 귀국할 때까지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서 비극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한국에서의 생활도 순탄하지 않아 귀국 20년 만인 1982년이 되어서야 호적이 만들어졌고, 결국 실어증과 지병으로 고생하다 1989년 4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金谷洞)에 있는 홍유릉(洪裕陵)에 묻혔다.
순정황후(純貞皇后) [1894 ~ 1964]의 마지막 사진
본관 : 해평
아버지 : 윤택영 (해풍부원군)
어머니 : 부부인 유씨 (기계유씨, 父 유진학)
황태자비 : 1906년 13세 때
황후 : 1907년 14세 때
소생없음.
귀인 이씨(광화당)의 소생 육 황자 |
육(堉) [1914 ~ 1915]
고종(高宗)의 제 9황자
어머니 : 귀인 이씨 (광화당)
순헌황귀비 (純獻皇貴妃) [1854 ~ 1911] 향년 58세
역사책에서 글로만 읽던 엄비사진이다. 민비가 죽은후 엄비가 중전이 되였다.
본관 : 영월
아버지 : 엄진삼의 맏딸
1861년 8세 때 대궐에 입궐
소생 : 1남 (황태자 은)
황귀비(1품) 책봉 (1903년)
1885년 32세 때 고종의 승은을 입었으나 명성황후에 의해 대궐 밖으로
쫓겨났다가 1896년 고종의 명으로 대궐로 다시 입궐하였다.
여성교육에 관심을 가져 내탕금으로 숙명여학교와 진명여학교를 설립하였다. 시호는 순헌, 궁호는 망덕, 원호는 영휘이다.
영친왕 이은
의민황태자(懿愍皇太子) [1897 ~ 1970]
고종의 7번째 아들
1900년 4세 때 '영친왕(英親王)' 책봉
1907년 11세 때 '황태자(皇太子)' 책봉
아버지 : 고종(高宗) [1852 ~ 1919]
어머니 : 귀비 엄씨(貴妃 嚴氏) [1854 ~ 1911]
1920년 나시모토 마사코(일본 메이지 국왕 조카)와 결혼
자녀 : 2남 (진, 황태손 구)
1963년 의민황태자비와 함께 한국에 귀국
영친왕 [英親王, 1897~1970.5.1]
호 명휘(明暉)
본명 이은(李垠)
한말의 마지막 황태자로 고종의 일곱째 아들. 이토 히로부미에 의하여 강제로 일본에 끌려가 교육을 받고 일본인 마사토와 정략결혼을 하였다.
고종의 일곱째 아들, 순빈(淳嬪) 엄씨(嚴氏) 소생.
순종황제의 이복동생이다. 1900년 영왕(英王)에 책봉되었다가 1907년(융희 1) 황태자에 책립되었으며 그해 12월 통감(統監)으로 부임해 온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 의하여 11세 때 강제로 일본에 끌려가 교육을 받고 일본 나시모토노미야[梨本宮]의 딸 마사코[方子]와 정략결혼을 강요당하여 비(妃)로 맞았다.
1910년 국권피탈로 융희황제(隆熙皇帝)가 폐위되자 왕세제(王世弟)로 불렸고, 1926년 순종이 승하하자 이왕(李王)이라 하였다. 일본의 육군사관학교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육군 중장에 이르렀다.
8 ·15광복 후 일본 왕족의 몰락과 더불어 고난의 세월을 보내다가 1963년 11월 56년 만에 환국을 하였으나 귀국 후 7년여 병상생활을 하다가 한많은 생을 마쳤다. 미망인 방자(方子) 여사는 창덕궁 낙선재(樂善齋)를 지키면서 명휘원(明暉園)을 경영하였다.
의친왕의 자녀들!
의친왕의 자녀들
상단좌측부터: 5남 이택 도련님(황손),1녀 이영 아가씨(황손), 4남 이창 도련님(황손), 3남 이방 도련님(황손)
(하단좌측부터: 6남 이곤 도련님(황손), 2녀 이진 아가씨(황손)
의친왕의 자녀들
의친왕 2녀 이진(이해원) 아가씨(황손)
이진(이해원) 아가씨(황손) 당시 19세, 1937년 결혼
의친왕의 2녀
현재 경기도 하남시에 살고 계신다 합니다.
조선왕조 역대 왕들의 기록
1] 32년간 세자로 있었던 임금은 순종
조선 마지막 왕인 순종 임금은 2세때에 세자로 책봉되어 32년간을 세자신분으로 지냈다.
세종대왕이 18명으로 가장많고, 다음이 성종 16명, 2대정종이 15명 순이다 * 세종대왕비 소헌왕후 심씨는 8남2녀를 낳았다.
각종 최장기 기록들
조선왕조 최다수의 기록들
2] 죽어서 왕이 된 인물은
조선조에는 죽은후에 왕으로 추존된 인물이 다섯명인데
* 덕종은 세조[수양대군]의 아들로서 세조1년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즉위전에 죽었다
인수대비의 남편이며 슬하에는 월산대군과 성종, 명숙공주 등 3명을 두었다.
* 원종은 선조의 5남으로 1627년에 왕으로 추존됨. 인조 등 4남을 둠.
* 진종은 영조의 아들로 사도세자와 4촌. 6세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즉위전에 죽었다.
양자인 정조가 즉위하자 진종으로 추존.
* 장조는 유명한 사도세자로서 영조의 둘째아들이며 정조의 아버지.
부인은 홍봉한의 딸인 혜경궁 홍씨.
당파싸움의 희생양이 되어 아버지 영조에 의해 죽음. 1899년 장조로 추존됨.
* 익종은 순조의 아들이며 헌종의 아버지.
4세에 세자로 책봉되고 19세때[순조27년]대리청정으로 참정하였으나 4년만에 죽고
뒤에 익종으로 추존됨.
3] 가장 많은 아들을 둔 왕은?
딸은 태종[이방원]이 17명이며, 성종이 12명, 중종과 선조가 11명 이었다.
4] 왕비를 가장많이 배출한 가문은?
*청주한씨가 1위[태조비:신의왕후],[덕종비:소혜왕후],[예종비:장순왕후],[성종비:공혜왕후]
[예종비:안순왕후], [인조비:인열왕후]로 가장많고
* 파평윤씨와 여흥민씨가 4명, 청송심씨와 안동김씨가 3명이다.
5] 왕비중 가장 자식을 많이 낳은 왕비는?
성종의 제9비 숙의홍씨도 7남3녀로 공동1위이다.
6] 가장 짧은기간 재위한 임금은
12대 인종이며 재임기간 9개월이었다.
7] 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임금은
21대 영조로서 51년 7개월로서 반세기동안 왕좌를 지켰다.
8] 가장 단명한 임금은 : [단종애사의 주인공 6대 단종으로서 17세에 사약을받고 죽음]
9] 가장 장수한 임금은 : [21대 영조로서 83세까지 장수했다]
10] 가장 많은 부인을 둔 임금은
3대태종과 9대성종으로서 12명의 부인을 두었으며, 세종대왕은 6명이었다.
1] 가장 오랫동안 벼슬에 있었던 인물은 ?
조선말엽의 정원용 으로서 20세에 급제하여 마지막 영의정을 지낼 때까지 72년간을 관직에
있었으며 그는 지극히 검소하여 청백리에 올라있기도 하다.
2] 호조판서를 최장기간 지냈던 인물은?
영의정 정태화의 후손인 정홍순으로 무려 11년간을 호조판서로 재임한 유일무이한 인물.
그는 재정문제에 대한 당대 제일인자의 명성을 날렸다.
3] 벼슬의 꽃인 홍문관 대제학을 최장기간 역임한 인물은?
당대의 대문장가 서거정[달성서씨]로 23년간을 재임했다.
4] 가장 여러대의 임금을 보좌한 사람은?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까지 7대의 임금을 보좌한 김세민[경주김씨]으로
70년동안 봉직하면서 7대의 임금을 보좌하는 대기록을 남겼다.
5] 조선시대 역사 인물중 가장 장수한 인물은?
여중추부사 권황[안동]과 죽림칠현의 한사람인 홍유손으로 모두 99세까지 살았다.
6] 가장 귀양살이를 오래한 사람은 누구일까?
다산 정약용으로 28세때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종교문제로 19년간 강진에 유배됨.
7] 예조판서에 최장기간 봉직한 사람은?
범옹 신숙주로 무려 15년간 예조판서에 재임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는 뛰어난 어문학자로서 7개국어에 능통했으며 외교문서는 거의 신숙주의 손을 거쳤다.
8]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영의정에 가장 오래 재임한 인물은?
유명한 재상 황희정승으로 지속적으로 18년간을 재임하는 대기록을 남겼다
그는 조선 제일의 청백리 관료이자 가장 대표적인 신하이다.
1] 영의정을 가장 여러번 지낸 인물은?
최석정[전주최씨]으로 서 56세에 영의정이 된후 8번을 지냈다. 그는 소론의 영수이었다.
2] 이조판서를 가장 많이 역임한 사람은?
42세에 이조판서가 된 박종덕[반남박씨]으로서 무려 18번이나 이조판서에 올랐다.
관료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관직으로서 임금의 절대적인 신임이 있어야 하는만큼 그는
공평한 인사에 최선을 다한 인물이다.
3] 당시 수도의 총책임자인 한성판윤[서울시장]을 최다 역임한 인물은?
이가우[연안이씨]로서 34세에 급제한후 열번을 한성판윤에 올랐다.
4] 판서[장관]직을 통털어 가장 많이 지낸 인물은?
박종래로서 이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등 5조판서를 돌아가며 총 15회 지냈다.
5] 사법기관의 장이었던 사헌부 수장을 최다 지냈던 인물은?
13년간 해마다 대사헌에 임명된 권상하[안동권씨]이며 송시열의 수제자이다.
6] 책을 가장 많이 저술한 인물은 누구일까?
지봉유설의 저자 이민구[전주이씨] 24세에 장원급제한 사람으로서 문장이 뛰어나고
저술을 좋아해서 무려 4000여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7] 선비의 표상이자 관리들의 자존심인 호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인물은?
유명한 추사체의 창시자 김정희. 그는 약 200개의 호를 지어썼다. 완당,추사,노과,등등...
8] 임금에게 벼슬을 그만두겠다고하는 사직상소를 가장많이 올린 사람은?
영의정이었던 정태화는 37번이나 사직상소[사직서]를 올려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조선왕조 최연소 기록들
1] 조선시대 통털어 최연소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은?
15세의 이건창으로 1866년[고종3] 강화도 별시문과에 합격했다.[김종서는 16세에 합격]
2] 최연소 장원급제자는 ?
17세의 박호[밀양박씨]는 1584년[선조17] 친시문과에 장원급제했다 [임진왜란때 전사]
3] 무과출신 급제자중 최연소 인물은?
17세의 남이[의령남씨]1457년[세조3] 무과에 장원급제.[유자광의 모함으로 주살됨]
4] 최연소로 세자에 책봉된 인물은?
영조의아들 사도세자는 2세에 세자책봉 되었으나 그만 뒤주속에 갖혀죽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사도세자는 10세에 결혼하여 최연소 결혼기록도 가지고 있다.
5] 최연소로 영의정이 된 인물은?
세종대왕의 손자인 이준[임영대군의아들]으로서 28세때 영의정에 특서됨.
6] 병조판서를 최연소로 역임한 인물은?
권람의 사위인 남이가 27세에 병조판서가 됨.
7] 홍문관의 수장인 대제학을 최연소로 역임한 인물은?
만인의 존경의 대상이었던 벼슬의꽃 홍문관 대제학에 한음 이덕형이 31세에 올랐다
조선왕조 최초의 기록들
1] 성리학 중심의 사회에서 과감하게 탈피하여 최초로 기독교 신자가 된 사람은?
평북 의주 출신인 이성하로서 고종11년에 영국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한국최초의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2] 조선 최초의 천주교 세례교인은 누구인가?
정약용의 매부인 이승훈이 북경에서 그라몽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3] 조선조 최초로 정승이 된 사람은?
조선개국 일등공신 배극렴이다. 그는 이성계보다 10살이 많았는데 개국후 처음으로
좌정승[문하 좌시중]이 되었다.
4] 조선왕조 도읍지 한성의 최초 한성판윤[서울시장]이 된 사람은?
성석린이 1395년에 초대 한성판윤부사로 임명되는 기록의 보유자가 됐다.
5] 과거급제를 하지 않고 영의정까지 오른 인물은?
황희정승의 아들 황수신이다. 그는 조상의 음덕으로 벼슬길에 오른 대표적인 인물이다.
6] 조선시대 최초로 일본에 대하여 상세하게 저술된 책은?
신숙주가 일본방문을 한후 저술한 [해동제국기]이다. 일본내막을 상세하게 적은 책으로
최초의 일본안내서가 되었다.
7] 족보는 고려시대에 이미 등장했으나, 현존하는 족보는 조선시대에 처음 만들어졌다는데..
세종5년에 간행된 문화유씨의 영락보라고 하는데 불행이도 전하지 않으며
현존하는 최초의 족보는 1476년의 안동권씨세보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