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덴마크

2노르웨이(박물관.시청사)

만정도화(滿庭桃花) 2007. 5. 20. 14:29

노르웨이 오슬로 바이킹 박물관


9∼11세기 북방을 호령했던 공포의 바이킹선박이

전시되어있는 공간으로 오슬로 피요르드에서 발굴된

오세베르그호, 고크스타호, 투네호등

3척의 배가 복원되어 있는 박물관이다.


3척의 배 중 가장 크고 우아한 오세베르그(Oseberg)호는

9세기초에 건조된 것으로 35명의

노젓는 사람과 돛을 이용해 항해하였다고 한다.

이 박물관의 외관은 성당 같고 내부는 경외감 마저 들게 한다.

전시되어 있는 3척의 배가

오슬로 피요르드에 묻혔던 것들 이라는게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바이킹의 높은 위치에 있던 자들은 그들의 죽음이

사후의 생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하기 원했고 때문에

모든 필수품들을 때로는

하인들도 함께 실은 긴 배 안에

그들을 묻었다.

묻힌 배는 매장된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말해주고 있다고한다.






노르웨이 하면 상징적으로 떠오르는 말이 생각난다.

바이킹이다.

바이킹이란 협곡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란다.

노르웨이는 협곡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므로 골짜기 골짜기마다

높고 험한 산들로 이어져 있어서

협곡을 따라 배를 타고 모여든 사람들이 바로 바이킹이다.

한 때 바이킹족은 영국까지도 점령할

정도로 싸움을 좋아했던 민족임에는 틀림이 없는것같다.

노르웨이가 워낙 황폐하고 거친 땅이므로

바이킹들은 호구지책으로 바다를 개척하게 되었고

바다를 개척하다 보니

멀리 떨어진 영국에까지 세력을 넓힐

수밖에 없는 입지 조건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여왕이 탔었다던 배.

날렵하고도 빼어난 곡선미.

나는 이 배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버선코의 곡선이 연상됐다.

이 배는 오슬로의 피요르에서 발견되었는데,

오세베르그호, 고크스타호, 루네호의

3척의 바이킹선 중에서 가장 크고 우아한 배. 나무의 재질은 떡갈나무.

침몰후 200년이 넘도록,원형이 손상되지 않고

이렇게 보존되었던 것은,

배가 진흙뻘에 묻혀있었기

때문에 부패를 면한 것이라고 한다.


박물관앞에 세워져 있는

이 흉상은 스티인(Stine)과 '잉스타드(Ingstad)라는 인물인데,

바이킹이 아메리카를 콜럼부스가 발견하기

300년 전에 발견했음을 밝힌 인물이라고 한다.




오슬로의 상징인 시청사는

오슬로 시 창립 900주년을 기념하여 1931년에 착공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중단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1950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항구에 위치하며, 2개의 탑을 가진 이 건물의 내외벽은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예술가들에 의한 그림과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모두가 볼륨있고 힘찬 작품들로서, 특히 독일군

점령하의 고뇌를 표현한 것이 많아 국민 감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2층에는 뭉크의 <인생>이라는 그림이 걸려있다.


에드바르트 뭉크 (Edvard Munch)

1863년 12월 12일 (노르웨이) - 1944년 1월 23일

1912년 쾰른에서 개최된

분리파 대전람회에 세잔, 고흐, 고갱과 전시 개최
1911년 오슬로 대학 페스티벌 홀의 벽화 콩쿠르 당선

1895년 파리 삽화, 무대 장치 작업
1894년 함부르크, 드레스덴, 프랑크 푸르트,

코펜하겐 전람회



뭉크의 절규







시청사가 마치 갤러리같은 인상을 주었다.

위의 외부사진과 같이

들어가는 입구의 벽면에는 조각품들이 붙여져 있었고

시청사 안쪽의 2층에는

노벨평화상 받는 곳의 시설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바로 여기 시청사

일층에서 평화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강당이다.


노벨상 이야기

노벨상의 6개부문중 평화상을 제외한 5개 부문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수상하는데

평화상만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수상하는데

그 이유는 노벨의 유언때문이라고 한다.

노벨이 그런 유언을 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 유언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추측만 무성한데..

전문가들은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1. 당시 노르웨이와 스웨덴이 통일을 하게 되는데
스웨덴이 주도하는 가운데 약자인 노르웨이에

보상 차원에서 평화상 선정권을 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점.

2. 당시 노르웨이와 노르웨이 의회가

국제적 분쟁에서 많은 중재노력을

하였다는 것을 노벨이 인정하고 있었다는 점

3. 노르웨이 문학의 열렬한 팬이었던 노벨이

평화 정착에 헌신한

노르웨이의 한 작가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을 받았다는 점.

전문가들은
이 세가지 중 어느 하나만으로 된 것은 아니고

세가지가 혼합적으로 작용하여

노벨이 노르웨이에 평화상 선정권을 주었다고 생각한단다.


또 다른 평화 노벨상 이야기


1896년 12월 10일은 노벨의 사망일 이며

매년 이날 노벨상 수상식이 있다.

노벨상에는 물리학, 화학, 생리학, 의학, 문학,

평화, 경제학상이 있으며 이중 경제학상은

노벨 기금과는 별도로

1968년 스웨덴 국립은행 창립 3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이다.

평화상은 유일하게 스웨덴이 아닌 노르웨이에서 결정하는데

이는 평화상 성격상

선정기준이 애매하고 나중에 다툼의 여지가 많아 일부러

노벨이 모국(스웨덴)과 사이가 나쁜

노르웨이에게 골탕먹이는 숙제처럼 떠넘긴 것이라는 설도 있다.

그리고 노벨상에는 이상하게도 수학과 관련된 상이 없다.

이는 당시 노벨이 사모하는

여인이 노벨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녀는 당대의 유명한 수학자를 사모했기 때문 이에 열받은

노벨이 수학상을 만들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후 연설을 하고있다.

2000.12.10


여기 한국식당(붉은건물 2층)에서

점심을 한식으로 배불리 먹고 릴레함메르를

경유하여 아름다운 피요르드 마을 오따 로 간다



오슬로 [Oslo]는 노르웨이

수도로서 인구는 50만 7467명(2000) 이다.


스카게라크 해협으로부터 약 100km나 만입한

오슬로 피오르드 깊숙이 있으며,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노르웨이의 정치·문화·상공업의 중심지이며 부동항이다.

시가는 왕궁으로 통하는 칼 요한스로(路)를 축으로 하여

방사선으로 도로가 나 있고, 구시가의 도심부에서 북쪽과 북동쪽의

계곡을 따라서 공장지대가 늘어서 있다.

신시가의 주택구는 이 공장지대를 둘러싸고 있으며,

특히 북서·남동쪽으로 널리 발전하여 근대적인 아파트 단지가 자리잡고 있다.

왕궁은 1848년에 건조된 것으로, 부근에 국회·시청사(시의

900년 축제를 기념하여 1950년 건립) 등이 있고, 부두 가까이에 있는 아케르스후스

성채는 130년경에 세워져 1319년~1380년까지 왕의 거성(居城)이었다.

오슬로는 하랄 하르드로데 3세에 의하여 1050년경에 창설,

14세기에는 한자동맹에 속하여 번영하였다.

1624년의 큰 화재 후

덴마크왕 크리스티안 4세가 재건한 것을

기념하여 크리스티아니아로 개명하였다가 1925년에 다시 옛이름인 오슬로로 고쳤다.



오슬로는 우리나라 지방도시

크기만한 소도시규모이다.

노르웨이(Norway)는 '북쪽의 길'이란 의미이고,

오슬로(Oslo)는 '하나님의 초원'이란 의미라고 한다.


노르웨이가 잘 살게된것은

북해의 석유가 생산되면서부터인데,

원유생산량이 세계2위라고한다.

그리고 날씨는 위도에 비해 겨울은 그다지 춥지않다.



호수가 많은 노르웨이 풍경!

가도가도 끝이없는 아름다운 호수가의 풍경이 돋보이는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는 하루 여행일정인데 반해

노르웨이는 4일간을 머물게 되는데,

그 이유는 북 유럽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노르웨이라는것을 알것같다.





풀밭인지 보리밭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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