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1
아테네시에서 저녁을 먹고
밤10시에 공항으로 이동하여 00시 50분발
한밤중에 OA325편으로 출발하여 02시 45분,
카이로공항에 도착해서 1시간이상
걸리는 지루한 수속을 밟고 호텔에 도착하니 새벽 05시 30분!
이사진은 새벽잠을 자고 나서
오전에 촬영한 호텔모습이다.
이 호텔 이름은 CONCORDE 인데
별4개의 최고급호텔로서
우리나라 동부건설에서 건축한것이라고 한다.
호텔에 들어올려면
경비초소 2곳을 거쳐서 들어오며
호텔정문에도 검색대가 있고
경비원들이 물품검사를 해야 호텔에 입장할 수 있다.
평소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경비가 삼엄하다고 하는데 때마침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전투중이라 더욱 삼엄한것이라고 한다.
수영장이 갖추진 멋있는 호델 풍경이다.
점심을 먹고 처음으로 방문한곳이
아기예수 피난교회(The Church of Abu Serga)이다.
성(聖) 세르지우스 교회(St. Sergius Church)가
'아기예수피난교회'다.
유대 왕 헤롯(Herodes: BC 73?∼BC 4)의
해침을 피해 요셉과 <아기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이곳까지 피난을 왔다고 한다.
그 피난처인 동굴 위에 세워진 교회다.
AD 303년 로마 황제 맥시밀리안 때
시리아 알라사파에서 순교한
세르지우스(Sergius)와 바쿠스(Bacchus)를 기념하려고 세웠다.
아직도 이 교회에는
매년 6월 1일 두 성인의 축일을 이어 온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은 10∼11세기에 재건한 것이했다고 한다.
아기 예수와 마리아
그리고 요셉이 피난한 동굴은 입구 왼쪽 성소에 있다.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난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어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태복음 2 : 13 ∼ 15)". 성경은 이렇게 적었다.
모세기념교회(The Ben Ezra Synagogue)는
아기예수 피난교회 바로 옆골목에 있다.
지금은 한국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만
종전에는 가끔 선교순례자들만
이곳을 들려서 성경의 역사를 공부하며 이스라엘로 갔다고 한다.
구 카이로 지역의
이곳은 선교순례자들의 필수코스이며
교인들은 꼭 이곳을 들린다고 했다.
모세기념교회(The Ben Ezra Synagogue)!
입구가 비좁다.
올드 카이로 지역에는
BC 350년 경 교회당이 지어졌는데,
BC 30년 로마가 이집트를 점령하면서 파괴됐다.
그 후 AD 313년 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그리스도 교의 관용령이 반포되면서
콥틱 교회에서 예배당을 짓기 시작했던 것이다.
AD 12세기엔
이 일대에 29개의 사원과 20개의 예배당이 있었다.
이 교회도 당시 알무알라카 교회의 부속건물이었는데,
유대인들이 사들였다고 한다.
이 교회에는 AD 1890년
퀘니자 문서 (Geniza Document)가 발견됐다.
AD 11∼12 세기 당시 유태인 생활상을 기록한 것이다.
또 이 교회 안에는 큰 대리석 석조물이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모세의 기도 장소라고 했다.
새벽잠을 자고나서 호텔방에서
밖을 내다보고 찍은 이집트 첫사진이다.
호텔은 최고급시설이였지만
시내아파트 모습은 영 아니였다.
이집트의 생활관습!
택시비는 정해진것이 없고 흥정을 하고 타야되는데
외국인이나 돈많은 사람은
더많이 내는것이 관습처럼 되여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집트의 일부 가정부들은
주인집 물건을 조금씩 매일 훔쳐가는데,
예를 들면 화장품, 로션, 반찬, 쌀과,
그리고 돈도 조끔씩 가져간다는데
이는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것좀 가져가도
죄가 않되는다는 그런 관습이 있어서 그렇답니다.
한국에서 처음 이집트에 와서
사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돼서 많은 고충을 겪는다합니다.
이집트에서 오래동안
살고있노라면 다 그러러니 하고 산다는군요!
그러나 대부분의 이집트인들은 친절하고 다정합니다.
특히 한국사람들 한테는
매우 친철하게 대해주었습니다.
나라가 잘살아야 국민도
대우받는것은 가정이나 국가나 다 마친가지입니다.
카이로 시내의 거리 풍경!
이집트는 1914년
영국의 보호령이, 1922년 입헌국주국이 됐다.
1952년 나세르가 입헌군주제를 타도하고
2.000여 년 만에
이집트 본토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통치자에 올랐다.
사다트와 무바라크가 뒤를 이어 통치중이다.
20년째 장기집권중인
무바라크 대통령(President Mohamed Hosni Mubarak)의
초상화가 마치 평양거리의
김정일 초상화처럼 거리 곳곳에 걸려있다.
사회주의국가 냄새를 물씬 풍긴다.
나일강변 옆 도로 모습입니다..
카이로의 강남이라는 거리 모습이다.
부자들이 많이 산다고 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도로에 차선이 않 보인다.
날이 워낙 더워서 인지,
차선 그리는 일이 쉽지 않은 까닭도 있지만,
예산도 별로 없고,
차가 하도 많아서 교통통제하고
차선 그리는 일도 쉽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
게다가 그나마 그려진 차선조차
무더운 열기에 날아가고 달리는 차들에 의해 지워지니
그리기를 포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저소득층 밀집지역!
그곳은 다름아닌 무덤(공동묘지)가 이다.
이집트인들은
사후 세계를 믿기 때문에 무덤에 수도시설도 해놓고,
그릇등도 가져다 놓는데 어려운
사람들이 이를
활용해 무덤을 지켜가며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대를 이어가면서 살아간다니 ..
마을(공동묘지)의 규모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스쳐 본것이지만 매우 넓은 지역이였다.
무지무지 컸다.
묘지와 사원과,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살아가는 인구 1600만명의 카이로 !
묘지와 주택과 함께 있는 카이로!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무바라크 정권도 이들 때문에 골치를 썩히고 있단다.
몇 백만 명의 주거지인
이 묘지를 이전하고 재개발하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으나
그들이 비워주질 않는다고 했다.
탱크로 인정사정 않보고 밀어버려야 될것인가!
남의 나라일이지만 참 고민이다.
.원래는 외곽이였지만
도시가 팽창하면서 중심부가 되었단다.
고층건물이 즐비한 신시가지를 벗어나면서
구 카이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없이 펼쳐진 2·3층 짜리 낡고 찌던 건물들!
저 건물들이 바로 묘지라니..
카이로의 첫인상이 영~ 개운치않다.
이집트에는
자동차 생산회사가 없어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세계 모든 자동차를
찾아볼 수 있는 자동차 전시장같았다.
먼 이국땅에서 우리나라 자동차를 보니 참 반가웠다.
내가 본 우리나라 자동차는
거의 다 새차로 뻔쩍뻔쩍 했다.
현대자동차 노조 제발 파업좀 하지말아라.
신기한 점은
이집트 카이로의 도로에는 차선이 거의 없다.
그래도 무질서 속의 질서가 있는지..
그래도 잘도 달리더라. 놀라웠다.
여름에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살인적 더위에도 관광버스 외에는
에어컨이 있는 차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차는 유리창을 열고 운행을 한다.
교통사고를 항상 사고를 조심해야 되는데
고급차가 받쳐도
잘잘못은 상관없이 고급차가 물어준다고 한다.
왜냐 돈이 많은 사람은 베풀어야 되기때문이랍니다.
보통은 서로 인샬라(신의 뜻)이니
어쩔수없다고 하면서
인샬라 한마디 말만 하고 헤어진다고 합니다.
처음 한국에서 온 이집트 상주기업직원들이나
대사관직원들은 처음 당해보고는
"인샬라~~"(신의 뜻~!!)를
이해하지 못해 어이 없어들 한답니다.
사고가 난 것도..
사고가 나서..다치게 된 것도..
모두 알라신의 뜻이란 거죠..
그래서.. 그 한마디만 하고..
사라져버린다고 하네요..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항상 주의해야한다고 합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우리나라 호떡같이
생겼으나빵안에는 바람만 들어있다.
맛이 없다. 그저 구수한 맛이다.
식당 앞에서 에쉬 빵 굽기하던
아낙네가 나보고 돈달라며 그릇을 내밀고 있다.
이집트 식 전통 양 갈비구이다.
샐러드와
이집트 빵 '에이쉬'가 곁들여 나왔다.
양 갈비구이는 그냥그랬다.
이집트 사람들이 즐겨먹는 "에쉬 브래드".
한국사람들은 안이 비여있어서
공갈빵 혹은 걸레빵이라고 부른단다.
걸레빵 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한것같다.
음식점입구에서 에쉬(공갈빵)을 굽고있는 여인.
사진을 찍을려고 했더니
친절히 포즈를 취해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은후에 옆에 돈그릇을 가리키며 돈 달란다.
눈에 짙은 화장이 시선을 끈다.
대부분 이집트여성들이 외출시
차도르(아바.aba]) 를 입고 눈만 빼꼼이 보일 때 그런 눈 화장이다.
아기예수 피난교회(The Church of Abu Serga)로
가는 구카이로 지역에서.
달리는 버스안에서 촬영한것이다.
붉은벽돌 집 창문이 작거나 아예 없다.
더워서 그렇단다.
이 도로에는 차선이 있는데 대부분의
카이로 시내 도로에는 차선이 없다.
4대가 달리면 4차선 5대가 달리면 5차선도 되는것이라고 한다.
아기예수 피난교회(The Church of Abu Serga)
지하입구통로 엽서등을 팔고있다.
교회안은 촬영금지라 촬영을 못했다.
아기예수 피난교회는
요셉과 마리아 아기예수가 헤롯왕을 피해 애굽으로
피난하던중 머물렀던
성스러운 장소에 건축된 교회이다.
그러면 아기 예수를 모시고 온 요셉은 누구인지 잠시알아보자.
이스라엘 12부족(部族) 족장의 한 사람이다.
느즈막에 난 아들로
아버지의 편애를 받아 형제들의 시기를 샀다.
요셉이 왕이 되는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형제들은 그를 죽이려고 하다가
이집트 대상(隊商)에게 팔아넘겼다.
운좋게도 이집트 궁중에 들어가 말단 관원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파라오(바로)왕의
꿈을 해몽한 것을 계기로 왕의 신임을 크게 얻고,
마침내는 총리대신이 되어 이집트 주변의 흉년과
기근을 예지하고 대책을 미리부터 세워 해결하였으며,
기근에 시달린 팔레스타인에 살던
아버지 야곱과 형제들을 맞아 태평성대를 누렸다.
진실 ·순종 ·인내 ·사랑 등 이상적 덕목을 갖춘 명재상으로서,
이국에서 이름을 날렸으며,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각광받는 인물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