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왕자

나이아가라

만정도화(滿庭桃花) 2007. 1. 11. 17:45







나이아가라 염소섬에

있는 니콜라 테슬라 동상앞에서



염소섬의 명칭

오대호의 이어리(ERIE) 호수에서 두 갈래의 강으로

갈라지며 만들어진 섬이 염소섬(Coat Iland)이고
염소섬은 옛날 한 인디언 추장이 사냥을 갔다가 사냥감도

찾지 못하고 고생만 하다가

병든 사낭개와 함께 돌아오겠다던 시기보다 훨씬 늦게 돌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 섬에서는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추장이 죽은 줄만 알고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해 먹을 것을 찾아 모두들 떠난후 추장이 이곳에 도착해보니

부족들은 물론 가족들까지도 모두들 떠나 버려 텅빈

섬에 염소들만 남아 추장을 반겼다고 한다.


이후 추장 혼자 이 섬에서 염소들과 함께 살면서 이섬 이름을 염소섬으로 불렀다 한다.



니콜라 테슬라 동상앞에서
니콜라 테슬라 [Tesla, Nikola, 1856.7.9~1943.1.7] (해설1)

미국의 전기공학자.
국적 미국 출생지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출생. 그라츠의 공업학교와 프라하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오스트리아 정부의 전신국에 근무하다가, 후에 부다페스트 및 파리에서 전기기사로 일하였다.

1884년 미국으로 건너가 에디슨 회사에서 수년간 발전기와

전동기(電動機)를 연구, 뉴욕에서 테슬라 연구소를 설립하고,

1888년 최초의 교류유도전동기(交流誘導電動機), 1891년 테슬라 변압기 등을 만들었다.

1895년 그가 개발한 2상교류방식은 웨스팅하우스사(社)에 의하여

나이아가라 수력발전소에 이용되었다.



자기력선속밀도(磁氣力線束密度)의 단위인 테슬라는 이 이름에서 딴 것이다.




니콜라 테슬라 동상앞에서



니콜라 테슬라 (해설2)

크로아티아출생으로 20c기 최고의 과학자이다

에디슨의 그늘에 가려져 그의 존재가치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당시 최고의 과학자 에디슨보다도 사회발전에 많은 공헌을했다

발명을 돈벌이 수단을 삼으려는 에디슨과 달리

니콜라테슬라는 발명자체의 즐거음을 찾았다.

28세의 나이로 에디슨 회사에 들어간 니콜라 테슬라 거기에서

에디슨이 사용하고있는

직류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 교류시스템을 바꾸자 주장했다



하지만 에디슨은 새내기인 니콜라테슬라의 그러한

주장을 새겨듣지않고 계속 직류시스템을 사용했다.

하지만 후에 니콜라테슬라의 주장되로 교류시스템이

월등이 좋다는 결과가 나온다.

유도전동기발명, 교류발전기,변압기,전동기 등의 특허를 가지고 있고,

테슬라코일 발명했다. 무선에너지전송기술 연구했고, 세계 최초로

나이아가라폭포에 교류발전소를 책임지고 설치했다.

또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 바로 그가 발명의 모태가 된것이다

당시 이러한 발명을 했을떄 누구도 그를 믿지않았던 사람들..

그는 정말 시대를 잘못만난 과학자였다.


이러기에 인생자체게 참으로 외롭고 불운한 그....
많은 발명을 했지만 많은 유명한 과학자가

그의 발명품을 훔쳐가기 일쑤였고...

에디슨 또한 그러했다고 한다. 노년기 돈이없어서 약을 사먹지 못했고

가족이 없고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정해서 정신병까지 들었던

니콜라테슬라 노벨상에 니콜라테슬라와 에디슨 공동수상을 하기로했지만...

니콜라테슬라는 무엇떄문인지..

노벨상을 사양하고 만다. 현 미국과학자 85%가 니콜라테슬라

전기문을 읽고 과학자가 되리고 결심했다고한다.

이렇게 수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많은사람들이

그를 알지못해 정말 안타깝다.

발명을 수익이 아닌 발명자체의 즐거움을 찾았던 니콜라테슬라 그는 진정한 과학자이다!

내용출처 : [직접 서술] 블로그 집필 - 沈承進



























홍신화의 생후2달째 되는 날!

첫 관광 외출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