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항주
상해의 랜드마크 동방명주 타워
저녁에 가서 어두웠다
항주에 가면 꼭 들르는 육화탑이다
항저우 육화탑 [杭州 六和塔(항주육화탑)]
중국 저장성[浙江省] 항저우시[杭州市]의
첸탕강[錢塘江] 부근의 웨룬산[月輪山]에 있는 전목탑(塼木塔).
육화탑 앞에 세워진 육화의 동상
돌을 들고있는 육화의 동상 ㅡ 얼굴이 험상, 화가 잔뜩 나 있다
육화탑은 육화소년을 기리기위해 그가 돌을 던진 산위에 탑을만들어 세운것이라고 한다.
그 내용은
육화의 아버지는 범람하는 전당에 조수에 휩쓸려 익사. 어머니마져 전당강에 사는
용왕이 데리고 갔다.
그래서 몹시 분개한 육화가 돌을 전당강에 집어던지자
수정궁이 흔들려 살수없게 된
용왕이 금은 보화를 주면서 화해하고자 하였으나
육화가 허락하지 않았다.
용왕은 하는수 없이 육화의 어머니를 되돌려주고
다시는 전당강의 조수로 백성들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그후론 항주의 백성들은 편안하게 살게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수원의 서호도
유명한데 항주의 서호도 괞찮다
동방명주 옆 빌딩에서 큰아들이찍어온 사진이다
상해에서 우리가 묵었던 호텔이다
상해에서 상해항공을 타고 장가계로 갔다
집사람이 먼저 올라가
비행기입구에서 내가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중국의 4대 미인
서시(西施)
하(夏)왕조의 말희,
은(殷)왕조의 달기와 더불어 주(周)나라의 서시는
지금의 항주출신으로 나라를 말아먹은 미녀로 불린다.
서시가 웃는 것을 보기위해
황제가 변방의
봉화를 올렸다는 고사와 비단찢는 소리를 좋아하여
수많은 국고를 탕진하며
비단을 찢었다는 이야기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서시는 주나라를 침입한
흉노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며,
오늘날에는 중국의 4대미인 중 최고의 미인으로 꼽히고 있다.
왕소군(王昭君)
왕소군은 전한 원제(元帝) 조정의 후궁이다.
그녀의 아름다운 그림을 본 원제에게 간택되었고,
오늘날에는 왕소군이 고국 한나라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처절하게 표현되어있는 유명한 시가 남아있다.
초선(貂蟬)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연환계의 주인공이다.
절세미인으로 몸을 바쳐 나라를 구하기로
결심하고 결국 여포로 하여금 동탁을 죽이게 했지만,
여포가 죽을 때까지 그의 첩으로 지냈다.
또한 초선의 운명이 가인박명(佳人薄命),
즉 여자의 용모가 아름다우면
운명이 짧거나 기구하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더욱 그녀의 미모에 많은 호기심이 여전히 남아있다.
양귀비(楊貴妃)
동양의 클레오파트라로 불리는
당 현종의 총애를 받다 비극적인 최후를 마친 미인이다.
원래 양귀비는 현종의 며느리였으나
35세의 나이를
뛰어넘는 로맨스로 오늘날까지도 유명하다.
양귀비의 모습은 백락천의
"장한가"에 의하면 글래머에 닮은 꼴이라고한다.
하지만 체구는 작은 편이어서
당현종의 손바닥 위에 올라가 새처럼 노래를 불렀다고 하는 전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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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의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항저우에 와서 서호를 보지않으면
어찌 항저우에 왔다고 할수있으며
서호에 와서 유람선을 타지않으면
어찌 서호에 왔다 할수있으리요!
어데를 가나 꽃은 아름답다
항저우의 유명관광지
서호의 제방 백제(白堤)
이날이 일요일, 많은 사람들이 놀러온다
항저우의 유명관광지
서호의 제방 백제(白堤)
중국에는
사람이 많다더니 어데를 가나 사람이 많다
동방문화센터 엄청큰 돌상이
양쪽에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태극문양이 있는 돌무대이다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중국도 많이 애를 쓰고 있다
지금도
동방문화센터에는 공사가 한창진행중이다
이 자동차를 타고 경내를 구경했다
문화센터 정문에서 들어가면 이곳이다
상해에서 항주로 가다가 어느 휴게소에서
이 계단을 올라가면 육화탑이 보인다
저 아래 집사람이 앉아있다
항주 용정차를 파는곳의 거리풍경이다
용정차가 최고라며 선전중!
농약을 얼마나 쳤는지 말해라 .
아무리 선전해도 나는 사지않겠다.
용정차 거리모습
용정의 차밭풍경이다
항주에서 알아주는 거지닭
거지닭이라는 이름부터가 심상치가 않다.
아니, 먹을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하지만 거지닭의 유래를 알고 나면 오히려 그 맛이 궁금해진다.
거지닭은 옛날 중국의 거지들이 먹을 것이 없어 몰래 닭서리를 했는데,
당장 마땅히 숨길 곳이 없자 닭을 잡아서 땅속에 묻어 두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곳 을 지나던 황제가 어찌하여
노숙을 하게 되었는데 마침 그 닭을 묻어 둔 자리 에 불을 지피게 된 것.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났고 그 땅을 파보니
그 속에 서 노릇노릇하게 익은 닭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닭을 진흙에 넣어 굽게 되었는데 이것이 거지닭의 유래다.
요즘엔 닭 의 내장을 발라낸 뒤
그 속에 버섯과 같은 야채를 넣고
연잎으로 감싼 후 진흙 을 발라 굽는 방식으로까지 발전했다.
동파육
동파육(東坡肉)은 저장 성 항저우의 대표적인 요리로 오겹살 돼지 찜 요리이다.
소동파가 이곳에서 벼슬을 할 때
처음 요리법이 개발되었다고 하여 동파육이라고 한다고 한다.
소동파
북송 시대의 시인인 소동파의 호에서 따온 이 름. 돼지고기 요리로
그가 직접 만들었다는 설도 있고 그가 즐겨 먹었다는 얘 기도 있다.
삼겹살처럼 기름이 적당히 있는 돼지고기를
기름에 튀긴 뒤
간장에 조려 먹는 음식으로, 밥반찬이나 술안주로 손색이 없다.
항저우로 좌천된 동파 소식은
여가가 날 때마다 틈틈이 돼지고기를 쪄서 먹곤 했다고 전해진다.
요리를 하던 중에 오랜 친구가 그를 방문해서 바둑을 두곤 했다.
소동파는 바둑에 열중해서 타는 냄새가 나도록 고기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내 놓은 것이 바로 동파육(東坡肉)이라고 하여
거지닭(叫花鷄)과 함께 항저우의 유명한 음식이 되었다.
거지닭과 동파육은 항주 여행객에게 필수 식사코스이다.
원래 이 사건이 발생된 곳은 황주(黄州)였는데,
후에 남송의 수도에 항저우로 확산되어 항저우의 대표적인 요리로 남았다고 한다.
1036-1101 향년 66세
(우리나라 고려 정종2년-고려 숙종6년)
소동파가 사별한 아내에 대한 애틋한 시
十年生死兩茫茫 不思量 自難忘
십 년 동안 산 자와 죽은 자
멀리 떨어져 있으나
그대 생각 지우려 해도 지을 수가 없네.
千里孤墳 無虛話 縱使相達應不識
천리 길 외로운 무덤에서
이 처량함을 말할 길이 없어라.
설령 당신을 저승에서 만난다 해도 우린 서로 알아보지 못하리.
塵滿面 髮如霜 夜來幽夢忽還鄕 小軒窓 正裗粧
얼굴엔 속세의 먼지 가득하고
귀밑머리는 하얗게 세어버렸으니
깊은 밤 꿈속에서 문득 고향에 돌아오니
조그만 난간 창가에서 당신 머리 빗고 몸단장하고 있었지.
相對無言 惟有淚千行
서로 마주보며 아무 말 없이
오직 눈물만 하염없이 흘릴 뿐이네.
料得年年腸斷處 明月夜 短松崗
해마다 애간장 태우던 곳은
휘영청 닭 밝은 밤 키 작은 소나무 아래였지.
십 년 전 사별한 아내의 무덤 앞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워하며 지은 소동파의 시다.
소동파의 아내 사랑은 아주 각별했다고 하는데,
그의 아내 왕불은 학식도 뛰어난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항주서호에서 유람선을 타기전 모습이다
서호에 놀러온 상춘객들
항주서호의 유람선에서
안내원이 설명하고 있다
항주서호의 유람선에서
유람선 난간에서
김구선생의 모습
상해 홍구공원의 아침
귀여운카리스마 손자가 마중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