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호사장초대
보라매 공원
먹기 아까운 생선초밥
보라매공원 옆 스타피쉬에서
박민호 사장 초대로
모인 초교동창생 부부모임
건강과 친목을 위하여!
보라매 공원옆에 위치한 기상청앞에서
기상청[ 氣象廳 ]
기상청의 역사
연원 및 변천우리 나라의 기상관측 역사를 보면
삼국시대에 일관(日官)·일자(日者) 등의 관직이 있었고,
고려 초에는 태사국(太史局)이라는
기관에서 역수(曆數)·측후·각루(刻漏)의 일을 맡아보았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때 서운관(書雲觀)이 있었고,
세종 때 관상감(觀象監)으로 개칭되었다.
관상감은 조선시대 말까지 행정관청인 동시에 연구기관이었고,
또한 관측소와 교육기관 구실을 동시에 수행하였다.
특히, 측우기로 관측된
서울지방의 강수기록(1770∼1907)은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하다.
현대적 의미의 기상관측은
1884년 부산전신전화국에서 일기와 기온 및 우량관측을 실시한 것이 효시이다.
그 뒤 광복 전까지는 인천에 있던 조선총독부 기상대 산하에
측후소 24개소, 출장소 19개소가 있었으며,
이때의 기상업무는 일제의 전쟁수행 지원의 목적도 컸다.
관측방법은 측풍기구관측(測風氣球觀測)·지자기관측(地磁氣觀測)·지진관측·천체관측을 행하였다.
기상청은
광복 이후 미군정청은 문교부 산하에 관상국(觀象局)을 두었고,
그 책임자로 미군장교 국장 외에
한국인 국장으로 당시 연희대학교 교수인 이원철(李源喆) 박사가 취임하였다.
1949년 8월 중앙관상대로 개칭되었으며,
이때의 기구는 대장·부대장·총무과·예보과·관측과·통계과·천문과로 구성되었고,
지방에 24개 측후소(남한 14, 북한 10)가 있었다.
이로써 1945년 말부터 일기도의 분석과 일기예보가 가능했으나,
북한·중국의 기상자료를
얻을 수 없어서 일기분석에 어려움이 많았다.
1982년 1월에 중앙기상대로 개칭되었고,
1990년 12월 기상청으로 승격하였다.
이때 기후국을 응용기상국으로, 지방기상대를 지방기상청으로,
그리고 측후소를 기상대로 각각 개칭하였다.
그 중 제주기상대는 제주기상청으로 기구를 확대하였고,
1998년 청사를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월동에서 동작구 신대방동으로 이전하였다.
해시계 측우기의 발명가
기상청 정문옆에 있는 장영실상
장영실[ 蔣英實 ]
조선 전기 세종 때의 과학자.
한국 최초의 물시계인 보루각의 자격루를 만들었으며,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와
수표를 발명하여 하천의 범람을 미리 알 수 있게 했다.
그 외 여러 과학적 도구를 제작 완성하였다.
주요업적 물시계, 간의대, 혼천의, 앙부일구, 자격루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장영실의 조상은
원나라 소주, 항주 출신으로 기록하고 있다.
고려에 귀화하여 아산군(牙山君)에 봉해졌던 장서(蔣壻)의 9대손이며
그의 집안은 고려때부터
대대로 과학기술분야 고위관직을 역임하였다.
그의 부친은 고려말 전서라는 직책을 지낸 장성휘이며 모친은 기녀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장영실의 신분은 동래현(東萊縣)의 관노(官奴)였다.
그의 과학적 재능으로 태종 때
이미 발탁되어 궁중기술자 업무에 종사하였다.
제련(製鍊) ·축성(築城) ·농기구 ·무기 등의 수리에 뛰어났으며
1421년(세종 3) 세종의 명으로
윤사웅, 최천구와 함께 중국으로 유학하여 각종 천문기구를 익히고 돌아왔다.
1423년(세종 5) 왕의 특명으로 면천(免賤)되어
정5품 상의원(尙衣院) 별좌가 되면서
관노(官奴)의 신분을 벗었고 궁정기술자로 역할을 하였다.
그 후 행사직(行司直)이 되고 1432년 중추원사 이천(李狀)을 도와
간의대(簡儀臺) 제작에 착수하고 각종 천문의(天文儀) 제작을 감독하였다.
1433년(세종 15) 정4품 호군(護軍)에 오르고
혼천의(渾天儀) 제작에 착수하여 1년 만에 완성하고
이듬해 동활자(銅活字)인 경자자(庚子字)의 결함을 보완한
금속활자 갑인자(甲寅字)의 주조를 지휘감독하였으며,
한국 최초의 물시계인 보루각(報漏閣)의 자격루(自擊漏)를 만들었다.
1437년부터 6년 동안 천체관측용
대 ·소간의(大小簡儀), 휴대용 해시계
현주일구(懸珠日晷)와 천평(天平)일구, 고정된 정남(定南)일구, 앙부(仰釜)일구,
주야(晝夜) 겸용의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태양의 고도와
출몰을 측정하는 규표(圭表), 자격루의 일종인
흠경각(欽敬閣)의 옥루(玉漏)를 제작 완성하고
경상도 채방(採訪)별감이 되어 구리[銅] ·철(鐵)의 채광 ·제련을 감독하였다.
1441년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와 수표(水標)를 발명하여
하천의 범람을 미리 알 수 있게 했다.
그 공으로 상호군(上護軍)에 특진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세종이 신병치료차
이천으로 온천욕을 떠나는 길에 그가 감독 제작한 왕의 수레가 부서져
그 책임으로 곤장 80대를 맞고 파직당하였다.
세종은 곤장 100대의 형을 80대로 감해 주었을뿐이었다.
세종업적의 대부분은 장영실이 발명했건만
세종도 영실이를 팽 시켰는가, 장영실이 너무 불상하다.
그뒤 장영실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전혀남아있지 않다.
보라매 공원에서
보라매공원은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395번지 대방로 219
일대인 옛날 공군사관학교 자리를 1985년 12월 20일에 보수하여
1986년 5월 5일 개원하면서, 공군사관학교 때의
상징인 "보라매"를 그대로 이름에 사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요시설로는 잔디광장, 에어파크, 연못(음악분수),
다목적운동장, 인조잔디축구장,
배드민턴장, x-게임장, 암벽등반대 등이 있고,
맨발공원 등 휴양시설과 각종 편익 시설도 구비되어 있다.
특히, 비행기 8대가 전시되어 있
는 에어파크는 옛 공군사관학교의 정기를 느낄 수 있다.
보라매 공원호수
보라매 공원호수에는 고기가 엄청많다
보라매 공원호수의 물고기를 관찰하는 사람들
보라매 공원 호수에서
일기 예보때면 TV에 많이 나오는 곳
기상청근처에 잇는 보라매공원 모습이다
보라매 공원에도 봄이..
박민호 사장
철쭉꽃과 함께
보라매 공원 에어파크
비행기 8대가 전시되어 있는
에어파크는 옛 공군사관학교의 정기를 느낄 수 있다.
보라매 란 무엇인가?
보라매는 5월에 알에서 깨어나 어미 매로부터
사냥하는법을 배운 뒤 겨울을
나려고 왔다가 붙잡혀 길들여진 매를 말합니다.
아직 새끼로 털갈이를
하지 않아서 보랏빛을 띠기 때문에 보라매라고 합니다.
보랏빛은 남색과 자주색이 합쳐진 빛깔이라
경우에는 청색으로도 보이기 때문에 청매(靑梅)라 부르기도 하며,
새타령에 나오는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의 해동청(海東靑)은
바로 한국의 청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원래 보라매는 '공군'이 아니라 '공군사관학교'의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냥을 잘 하는 매이니까 대한민국 공군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즐거운 모임이였습니다
사모님들의 차렸자세를 보노라니 모두 여군출신들같습니다. ㅋㅋ
라이락향기가 꽃피는 봄을 알린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kLjku7u577Q
아빠는 격투기 선수
UFC 파이터 타렉 사피딘의 두 살 된 아들이
소파 위에서 훈련 중이다. 펀치 스피드가 장난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