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며느리
세종대왕은 며느리 복이 없었다
세종 소헌왕후
그러면 세종의 며느리 즉 문종의 부인들에 대해서 알아보자
깐깐하고 점잖키로 이름난 세종대왕과
지성을 갖춘 세종비 소헌왕후는 금실도 좋고,
만백성의 어버이라 불리우기 손색이 없는 임금내외였지만
단한가지, 며느리 복만은 없었다.
세종대왕의 맏아들
문종(文宗, 1414-1452)
조선의 제5대 왕(재위 1450∼1452).
왕비 현덕왕후(顯德王后)
아버지 세종(世宗)
어머니 소헌왕후(昭憲王后)
문종의 첫번째 부인
문종이 임금이 되기전 세자로 있을 때 결혼해 세자빈이 되었다.
세자나이 14살에 4살연상인 18살이였다
세자빈 휘빈 김씨는 요즈음 말로 미모의 육체파 스타였으나
세자(문종)는 궁녀들과 바람을 피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부인하테 관심이 없어서인지 하여간에 세자가 부인을 멀리하였다.
그래서 휘빈 김씨는 세자의 마음을 자기에게
비서(시녀)들과 연구하게 되었다.
연구결과는 아래와 같았다.
첫 번째
세자가 좋아하는 궁녀의 신발을 훔쳐다가 그 신발을 태워
세자가 마시는 술이나 차에 섞어 마시게 한다.
두 번째
교미를 하는 뱀 한 쌍을 잽싸게 잡아다가 가루로 내어 동궁전 뒤뜰에 묻는다,
세 번째
수컷 노루의 고환을 품속에 지니고 다닌다.
이상과 같은 방법을 시행하면 바람피우던 세자는
바람을 피우지 않게되여 반드시 빈궁한데만 온게 된다는것이였다.
예나 지금이나 이러이러케 하면 좋다더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궁내에 알려지자 말많은 대신들이 들고 일어났다.
장차 이나라의 국모가 되실분이 이렇듯
질투가 심하여 이런 해괴한 일을 행하였음은
용납할 수가 없다고하면서 폐서인 하라고 난리를 쳐댔다.
전하!
며느님을내 쫒으셔야 됩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점잖키로 유명한
세종대왕 내외분은 하는수 없이 첫째 며느리인
휘빈 김씨를 사가로 내쫒고
빈궁의 지위를 박탈하고
휘빈 김씨의 아버지 김오문의 벼슬도 박탈해버렸다.
이 당시 김오문은 세종의 사돈이 되면서
삼군부 도총재의 관직에 있었는데 성미가 괄괄하고
대쪽처럼 곧기로 이름이 난 사람이였다.
세자빈에서 쫒겨온 딸을 보고 충격 받은
김오문은 부인과 딸과 같이 자결을 해버린다.
자식 잘못둔 죄는 부모에게도 있다며
부인과 딸과 같이 자살을 한것이다.
세자한테 시집보낼때는 큰복인줄 알았으나
복이 화가 되여 딸과 부인과 함께 죽게되는 엄청난 화가 된것이다.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것인데
부모와 딸이 모두 자살한것은 너무 한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