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제주-10(도깨비도로)

만정도화(滿庭桃花) 2008. 8. 4. 12:44

귀향하는 날!




재즈마을

제주도에서 2박한 팬숀 노래하는 산호


팬숀 맞은편에는 감귤체험 농장이 있다.

귤은 아직 작은열매




재즈마을 입구

여행후 제주도의 이미지를 좋게 해준곳으로 기억된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어데 있어??

신화가 할아버지를 크게 부르며 찾는다.

할아버지가 일찍 산책을 나온것을 알고 신화가 신통방통하게도

숙소에서 멀리까지 팬티바람으로 할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팬티 입고신발은 할머니 구두 신고 폼 잡은 손자

재즈마을 도로상에서 신화가 할아버지와 만나서 브이



신발은 할머니 신발을 신고 나왔네..



아침운동으로 그네도 타보고..



귀향길!

바람이 엄청 시원하다

숙소에서 출발하여 제주공항을 향하다가 잠시 휴식



잠자리와 뭉게구름 그리고 저멀리 섬이 보인다

저멀리 보이는 섬의 이름은?

공항가는길에서 차창밖으로 보이는 제주바다



자동차 안의 작은아들 내외

제주여행 3박4일 동안

작은아들은 운전하고 작은며느리는 관광안내하며 수고 많았다.

그리고 뉴카니발 자동차도 고생많았다



서귀포에서 제주공항으로 가는길

신비의 도로

일명 도깨비 도로라고도 한다.



제주도 도깨비도로

제주시내에서 4㎞ 떨어진 제주시 노형동 제2횡단도로(1100번도로) 입구의 200~300m 구간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1981년 신혼부부가 택시에서 내려 사진을 찍다가 세워둔 차가 언덕 위로 올라가는 현상을 목격한 이후 세상에 알려지게 되어 관광명소가 되었다.


신비의 도로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지표측량에 의해 오르막 길로 보이는 쪽이 경사 3도 가량의 내리막길이며 주변 지형 때문에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라는 사실이 지표측량 결과 밝혀졌다.

관광명소가 된 이래 교통 체증과 사고의 위험 때문에 도로 서쪽에 너비 15m, 길이 1.3㎞의 우회도로가 생겨났고 도로변 3만여㎡ 터에 주차장·산책로·휴게실 등을 갖춘 관광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5.16횡단도로(제1횡단도로)에서 산천단을 조금 지나 관음사로 빠지는 산록도로(1117번도로) 초입에도 제2의 도깨비도로가 있다. 주변에 검은오름·한라수목원 등의 관광지가 있다.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


아름답고 소박한 섬 제주, 사방이 신비로운 오름과 천연 소나무숲 지대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돌공원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희귀 용암석으로 조성된 돌 공원이다.





제주국제공항 대합실에서



깨끗하게 잘 정리된 제주공항에서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손녀딸!

할아버지 어서 오세요!

비행기 타러 가다가 명랑공주가 할아버지를 슬쩍 쳐다보고 있다




비행기표를 받아들고 비행기 타러 혼자 걸어가는 명랑공주

가방메고 걸어가는 모습이 제법 의젓하다. 채원이도 이제 많이 자랐다



대한항공에서 1회 제공하는 음료수를 마시며

김포공항 오는길의 대한해협 상공



엄마와 다정하게 의젓하게 차마시는 신통방통



아빠와 함께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자연작품 뭉게구름은 언제나 아름답다


이제 곧 김포공항에 도착 한다고 방송이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 항공기 안에서





김포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며느리가 어머니를 모시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가방메고 혼자서 의젓하게 앞서서 걸어가는

명랑공주의 뒷모습이 귀엽다




여행 잘하고 왔습니다.

김포공항 도착기념 가족사진



작은아들 내외의 효도여행으로

아버지 어머니는 많이 즐거웠고 행복햇다. 고맙다.

1986년 22년전에 갔을때와 비교하니 제주도가 대단히 발전된것을 실감하고 왔다.

유럽이나 미국을 다녀온것같은 그런 느낌이였다.

우리나라의 눈부신 발전상을 보면서 한국인의 자긍심을 다시 한번 느낀다.

2008.7.29 - 8.1까지

3박 4일간의 제주도 여행 사진일기

- 끝 -

서귀포 칠십리

바닷물이 철석 철석 파도 치는 서귀포
진주 캐는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휘파람도 그리워라 콧노래도 그리워
서귀포 칠십리에 황혼이 온다

흰비늘이 반짝반짝 물에 뜨는 서귀포
미역따는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은조개도 그리워라 물파래도 그리워
서귀포 칠십리에 물안개 졌네

서귀포칠십리의 유래


서귀포칠십리'가 국내에 널리 알려진 직접적인 동기는 1938년에 조명암씨에 의해 「서귀포칠십리」가 노랫말이 지어졌고, 박시춘 작곡, 남인수의 노래로 불려지면서 부터입니다.

당시 일제치하에 억눌려 살았던 국민들에게 끝없는 향수와 애틋한 그리움을 이끌어 내면서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서귀포칠십리'의 사실기록은 1416년(이조시대 태종16년) 안무사 오식에 의해 제주도 행정구역이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으로 나누어 지게 되었으며, 1423년(세종 5년) 안무사 정간에 의해 정의현청(고성)이 현재의 표선면 성읍마을로 옮겨지면서 70리의 거리적 개념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1653년 제주목사 이원진에 의해 발간된 『탐라지』에 의하면, 서귀포는 정의현청에서부터 서쪽 70리에 있으며, 원나라에 조공을 바칠 때 순풍을 기다리던 후풍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서귀포칠십리가 처음에는 정의현청이 있었던 현재의 성읍마을에서 서귀포구까지 거리를 알려주는 개념이었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서귀포칠십리가 단순한 '거리개념'이 아니라, 제주도민의 마음속에 언제나 안식과 위로, 그리고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이어도'처럼, '서귀포칠십리'라는 의미 그 자체가 서귀포시민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영원한 이상향이자, 서귀포의 아름다움과 신비경을 대변하는 고유명사로 자리잡혀 왔슴니다.

이를테면, 서귀포칠십리는 '서귀포의 뿌리와 정서, 이미지'를 함축한 발전된 개념으로 정착되어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고향'으로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