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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가리부다페스트-2

만정도화(滿庭桃花) 2008. 7. 1. 18:34

부다페스트는 헝가리 수도


어부의 요새
어부의 요새는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뾰족한 고깔 모양의 일곱 개의 타워로 설계되어 있고

 각 타워들은 수천년전에 나라를 세운 일곱 개의 마자르 족을 상징한다.
하얀색의 화려한 성벽과 마차시 교회까지 뻗어있는

 계단은 관광객으로 하여금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들 정도로 아름답다.

 

 

어부의 요새


이 요새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옛날에 어시장이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라는 설이고,

다른 한 가지는 18세기에 어부들이 성벽에서 적군을 방어했다는 설이다.

이 곳에서는 다뉴브 강변의 아름다운 페스트

지구의 도시와 후방의 헝가리 평야가 넓게 펼쳐진다



부다페스트 어부의 요새에서 바라다 보이는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 어부의 요새는

하얀색의 화려한 성벽과

마차시 교회까지 뻗어있는 계단은

관광객으로 하여금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들 정도로 아름답다



헝가리 최초 국왕인

이스트반1세 국왕의 동상

어부의 요새안에 있다



어부의 요새에서 바라본

다뉴브강과 부다페스트시내

강 건너 국회의사당이 보이고

강을 가로질러 부다와 페스트를 있는 세체니 란츠히드 다리도 보인다



부다페스트 어부의 요새에서

이날 날씨가 엄청더웠다.



어부의 요새에서 바라다 본 부다페스트 전경

 



어부의 요새에서

바라다 본 부다페스트 전경과 다뉴브(Danube)River




어부의 요새에서 바라다 본

부다페스트 전경

다뉴브강이 없는 부다페스트는 상상할수 없다.




어부의 요새에서

부다페스트시내를 배경으로




어부의 요새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뾰족한 고깔 모양의 일곱 개의 타워로 설계되어 있고

각 타워들은 수천년전에

나라를 세운 일곱 개의 마자르 족을 상징한다고 한다




어부의 요새 아래에 있는

이스트반1세 국왕의 동상앞에서



어부의 요새를 관광하고 내려오면

마차시성당이 있는곳으로

나오는데 이곳에는 많은 화가들이 모여있다


마차시성당

마차시 [1440~1490]

얼듯 듣기에 우리나라

소마차 생각이 들어서 무슨소린가 혼동했는데 알고 보니 헝가리 왕의 이름이란다.


헝가리의 왕(재위 1458~1490).

터키 ·보헤미아 ·폴란드와 대항하였으며 빈을 점령, 강력한 국가를 이룩하였다.

 적극적으로 이탈리아의 문화를 받아들여

 르네상스를 꽃피웠고 포조니대학을 창설하는 등 학술을 진흥시켰다.

마차시성당은 마차시 왕의 시대를 맞아

 80m의 고딕탑이 세워지면서 '마차시 교회'라 불리게 되었다.

16세기에는 투르크군의 침략으로 교회가 이슬람 사원으로 쓰이기도 했고,

투르크 지배가 끝난 18세기에는 바로크 양식의 그리스도 교회로 회복되었다.

1867년 헝가리 왕으로 즉위한 합스부르크가의

프란츠요제프 황제와 엘리자베트 황후의 대관식이 이 곳에서 거행되었고,

리스트는 이 날을 위해 <헝가리 대관 미사곡>을 작곡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내가 갔을때는 대대적으로 수리중이라 밖에서 쳐다본보고 왔다.





총구멍이 그대로 보존되여있는 부다왕궁 입구 건물!

2차대전때흔적을 그대로 놔두고많은 국민과 학생들의

역사의 교육장으로 삼고있다고 한다.

참고로 부다왕궁의 부다는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부다이다.

2차대전과 헝가리

제2차 세계대전때 헝가리는 독일·이탈리아 측에 가담했다.

그러다 보니 헝가리는 2차대전 말기가 되자

거의 전 국토가 전쟁터화 되었으며, 전후에는 소련의 세력권에 들어갔다.


1946년에 공화제가 실시되었으나 소련에 의해 무너지고

1949년는 공산주의 정권이 성립되었고,

라코시가 이끄는 근로자당(공산당)에 의하여 소련의 위성국으로서 공산주의화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소련 - 라코시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1956년의 헝가리 의거를 불러일으켰다.

10월 23일 부다페스트의 대학생을 중심으로 하여

약 10만의 시민이 봉기한 반공 운동은 소련 군대의 개입으로

 수만 명의 사상자와 20만 명에 이르는 국외 망명자를 낸 채 진압되었다.


이 사건이 있은 뒤 근로자당은

사회주의 노동자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J.카다르를 당 제1서기로 선출,

 1968년에는 경제개혁을 단행, 동구 공산권 중에서는

그래도 폭넓은 자유화 정책을 시도하였으나

소련의 체코 침공에 가담함으로써 세계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부다왕궁 들어가는길



부다왕궁 들어가면서 우측이다

2차대전때모두 파괴되여

빈터로 남아있으나 복원하지않고 역사의 교육장으로 삼고있다고 한다.



헝가리 부다왕궁

바르헤지 언덕에 서 있는 네오바로크

 양식의 궁전이며 13세기 때 지어진

 궁전인데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어 새로 복구되었다고 한다.

문밖으로다뉴브강이 보인다.

강을 끼고 있는 위치나

왕궁의 문이 터키 이스탄불의 돌 마바흐체궁전과 흡사하다.

왕궁이 있는 언덕 북쪽에는 빈의 문광장이 있는데

 문은 1896년에 파괴되었으며

 1936년에 터키로부터의 독립 25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라고 한다.



부다왕궁에서 바라다 본 다뉴브강



헝가리 상징 독수리

건국의 아버지 아르파드를 낳았다고 전하는 전설의 새 툴루

부다왕궁입구에 있다



겔레르트언덕으로 관광온 여행객들



겔레르트언덕의 대표적인 표상이다.

우리나라 남산 타워같은 존재.

다뉴브강을 비롯하여

부다페스트 전지역에서 이 여인동상이 보인다.

날씨가 엄청더워서 여기 겔레르트언덕 올라오는데 힘들었다

 



겔레르트언덕에서 바라본 부다페스트 전경



겔레르트언덕의 조각상!

헝가리가 2차대전 패배후

소련군이 진주하며만든 동상이라고 한다.

즉 인민해방기념

노동자가 뱀을 주먹으로 줘패는 모습인데 뱀은 자본주의자들을 뜻한다 한다



겔레르트언덕에서 바라다본 다뉴브강

겔레르트는 사람이름이다.

11세기 초 헝가리 최초의 국왕인 이슈트반1세가

아들 임레왕자의 교육을 위해 이탈리아에서 초빙한 수도사라고 한다.

겔레르트는 헝가리에 기독교를 전파했으나

1046년 이에반대하는 폭도들에 의해

산채로 와인통에 갇혀 이 언덕에서 다뷰브강으로 던져졌다고 한다.

그이후부터 사람들이 이곳을겔레르트 언덕이라고 불렀다는것이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St.Stephen Basilica)


기독교를 헝가리에 전파한 위업으로 기독교의 성인으로

 추대된 이슈트반 성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부다페스트 최대의 성당으로 50년에 걸쳐 완공되였다고 한다.

교회의 탑은 96메터로 부다페스트에서

 가장높으며 이 숫자는 헝가리가 건국된 해인 896년의 96을 의미한다고 한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St.Stephen Basilica)을

올려다 보며

안내자로 부터 설명을 듣고있는 모습이다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만난 미국 여교수

쾌활하고 명랑한 멋진 여장부였다.


LA, Chalon Campus
Mount st. Mary,s College
Anne Rigone

명함을 건네주면서 이사진을 꼭 보내달라고 했다


헝가리여 안녕! 부다페스트여 안녕!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향하여 버스는 달린다.

다뉴브강 유람선

 

어부의 요새

 

겔레르트 언덕에서 바라본 다뉴브강

 



도나우강 [Donau R.] 다뉴브(Danube),


도나우강 [Donau R.]

독일 남부의 산지에서 발원하여 흑해로 흘러드는 국제하천.

위치 독일 남부의 산지에서 발원

길이 약 2,850km,

독일어로는 도나우 [Donau]

영어로는 다뉴브(Danube),

헝가리어로는 두나(Duna),

모두 라틴어 두나비우스(Dunavius)에서 유래한다.

 볼가강에 버금가는 긴 강으로,

본류는 독일·오스트리아·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유고슬라비아·불가리아·루마니아·우크라이나 등

 여러 나라를 지나고, ·부다페스트·베오그라드 등 각국의 수도가 모두 그 본류 연안에 위치한다.

도나우강은 알프스 북부의 해발고도 1,000m 미만의 슈바르츠발트 산지에서 발원한다.

여기서부터 빈까지는 산지하천으로, 깊은 하곡(河谷)을 형성하면서

바이에른 지방을 동쪽으로 흘러 오스트리아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인강()을 비롯하여 잘차흐 ·엔스 등 알프스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류의 물을 모아, 알프스와 카르파티아산맥을 가르는 경치 좋은 협곡부를 흐른다.

권한을 상류인 울름까지 연장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베오그라드조약(1948)에서 자유항행은 인정하나

 관리권은 연안 제국에 한정하고, 연안 제국의 무장자유(武裝自由)가 인정되었다.

[출처] 도나우강 [Donau R. ] | 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