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필드박사 37주기 추도예배
스코필드 박사 동상 - 강신봉(문협회원) 자료창고
스코필드 박사 동상 - 강신봉(문협회원)
「물을 마시면 샘이 있음을 생각하고, 나무에 오르면 뿌리가 있음을 생각하라」는 말이 있다. 이는 자기 존재의 근원과 근본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좀더 쉬운 말로 표현하면「내가 여기에 서 있음은 하늘에서 뚝 떨어져 온 것이 아니고, 어떻게 태어나서 어떠한 과정을 거쳐 성장하였으며 어떻게 해서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 역사의식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은혜와 빚에 대하여 감사할 줄 아는 인간이 되라는 권면의 말이다.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는 전등을 쳐다보면서 「토마스 에디슨」을 생각하고 하늘 높이 나르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라이트 형제」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저 신기하고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만끽하다보니 마치 공기와 빛이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를 잊어버리고 살듯이 그 분들의 공헌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 발명가들의 일생을 통한 노고와 인내, 불굴의 연구정신이 우리 인간역사에 큰 문명의 터전이 되었음을 한 번쯤 되새겨 볼 때 그 고마움과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아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만년 우리 민족의 긴 역사를 훑어 볼 때 왜정 36년(1910-1945)이란 기간은 우리 민족이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최대 굴욕의 역사요 자아상실의 위기를 경험한 절단의 역사였다.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겼고 내선일체 창씨개명의 굴레 속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는 없어져야 할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운명 속에서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는 근본을 입증한 것이 기미년(1919)의 3.1운동이었다. 이는 마치 고양이의 먹이가 된 쥐가 최후 발악으로 고양이를 물어 뜯는 격이었다. 우리 이천만 동포는 죽기를 각오하고 자유와 독립을 외쳤다.
이렇게 어려웠던 시기에 스코필드 박사는 1916년 캐나다에서 한국에 파송된 의료선교사였다. 하나님의 선교사명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그 비참한 운명에 동참하면서 코리언을 사랑하게 되었던 것이다.
민족대표 33명과 더불어 3.1운동의 34인이라고 일컬어지는 박사는 비밀결사가 왜경에게 발각되어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어야 했고 1920년 결국 추방을 당했던 것이다.
70년 82세를 일기로 서울에서 영면하시기까지 우리 민족을 너무도 사랑하신 스코필드 박사는 "나 죽거든 한국 땅에 묻어주오. 그리고 내가 돌보던 아이들을 보살펴 주시오" 라고 유언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배려에 의해 국립묘지 독립유공자 묘소에 안장된 유일한 외국인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캐나다 땅에 와서 좋은 집도 장만하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살아갈 수 있음은 감사한 일이다. 우리 2세들도 희망과 포부 속에서 잘 성장해서 사회에 진출하고 있다.
그러나 스코필드 박사가 왔을 때 한국땅의 현실은 너무나 비극적이고 절망적이었다. 돈이 있어도 사먹을 음식이 없었고, 춥고 불쌍한 일들만이 박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던 아픔의 시대였다. 박사는 신앙적 사명으로 자신의 불편과 괴로움을 초월하여 우리 민족을 돌보는 일에 혼신을 다 바쳤다.
지금은 캐나다의 많은 우리 한인교회에서 세계 여러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할 정도로 신앙의 민족으로 성장하였다. 이렇게 축복을 받기까지 우리는 너무나 많은 은혜와 도움을 받았다. 그러한 은혜와 도움에 감사하고 기도드리는 마음에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다.
최근 한인사회에서는 스코필드 박사가 우리 민족에게 헌신해 주신 뜻을 기리고 감사드리는 마음에서 그분의 동상을 이 캐나다 땅에 세워드리기로 마음을 모았다. 민족이 어려웠을 때 우리를 찾아와 도와준 은인의 동상 앞에 꽃 한 송이 놓아드리며, 머리 숙여 기도 드리는 한인 후세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캐나다에 계신 동포 한분 한분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모아 스코필드 박사의 동상이 세워지기를 기대한다.
강신봉 스코필드박사 동상건립위원장의 헌화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이 헌화하고 있다
토론토 조성준의원 헌화
토론토 동물원 Paul Harpley 지배인의 헌화
묵념
스코필드박사 37주기 추도예배 참석한 일동
앞줄 앉은사람 우측으로 부터 홍충선 강신봉
스코필드박사 추도회에 참석한 일행
중심에 정운찬총장과 내가 서있다.
대부분 대학교 총장님들과
유명한 목사님들 그리고 박사님들이신데 인물은 내가 제일낳은것 같다.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좌로부터 토론토동물원 Paul Harpley지배인,
토론토 조성준 시의원,홍충선, 스코필드박사 동상건립위원장 강신봉
서울대 교정에서
스코필드박사 추모회에
참석한 일행모두가 서울대교수회관에서 다같이 식사를 했다
강신봉회장
강신봉회장
이상순여사
강감찬장군의 낙성대에서
강신봉의 선조 강감찬장군의 사당( 낙성대)에 참배하러갔다.
서울대 후문에서
승인이 서울대 다닐때 내가 자주 가보던 생각이 난다
낙성대에서, 사진 잘 나왔다
낙성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