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방문일기-2
죽마고우 가인 강신봉
카나다에서 모처럼 고국을 방문한
친구내외분과 함께남한산성을 탐방했다
소풍나온 탐방객들
여기가 남한산성이요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中部面) 산성리(山城里) 남한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산성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었다. 북한산성(北漢山城)과 더불어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 중의 하나로,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쌓은 주장성(晝長城)의 옛터를 활용하여 1624년(인조 2)에 축성(築城)하였다.
남한산성은
《남한지(南漢志)》에 따르면, 원래 심기원(沈器遠)이 축성을 맡았으나
그의 부친상으로 인하여 이서(李曙)가 총융사(摠戎使)가 되어 공사를 시작하여,
1626년 7월에 끝마쳤다. 공사의 부역(賦役)은 주로 승려가 맡아 하였다.
남한산성의 수비는 처음에는 총융청에서 맡았다가
성이 완성되자 수어청이 따로 설치되었고,
여기에는 전(前)·좌·중·우·후의 5영(營)이 소속되었는데,
전영장(前營將)은 남장대(南將臺)에, 중영장은 북장대에,
후영장과 좌영장은 동장대에, 우영장은 서장대에 진(陣)을 쳤다.
현재는 서장대(守禦將臺라고도 함) 하나만이 남아 있다.
수어사(守禦使) 이시백(李時白)이 축성 뒤에 처음으로
유사시에 대비할 기동훈련의 실시를 건의하여,
636년(인조 14)에 1만 2,700명을 동원하여 훈련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그 해 12월에 막상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여러 가지 여건으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성문을 열어 화의(和議)하고 말았다.
결국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쌓은 성이었으나 제구실을
하지 못한 뼈아픈 역사(役事)였다.
남한산성은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溫祚王)의 성터였다고도 한다.
여기 이 성벽 아래 저기에서청나라 군사들의
한겨울 포위작전으로 피난온지 45일만에 항복하고 말았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