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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

형님1주기. 남양형수

홍길선 선생

서거1주년가족추모제



다정했던 우리 형제의 모습

2006.7월 형님 생신날





중국 계림에서 형님과 함께



형님을 모시고 밤따러 갔을때

2004.09.09

용인시 원삼면 두창리 용수마을 용수농원

나는 왜 형님을 모시고 밤을 따러 다녔을까?

한(恨)맺힌 밤나무와 감나무


외할머니댁 울타리 안에는 감나무 세그루가 있었는데 생전에 외할머니께서는 외삼촌에게 가운데 있는 감나무 하나는 한마을에 사는 큰딸(나의 어머니)에게 준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러니까 감나무 두 그루는 외삼촌의 것이고 한 그루는 어머니 것이였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집도 없어지고 집터는 밭으로 변해있었지만 감나무 세 그루는 밭두렁에 그대로 있었다.

큰형님이 6.25 전쟁전 서울역에 근무하셨을 때 외삼촌께서는 '우리 큰조카, 우리큰조카' 하시며 서울가는 기차표도 부탁하시고 감도 우리가 따가게 하시며 우리가 기와집 지을 때 외가댁 종중 땅에 집도 짓게 해주시고 나무도 외가댁 종중 산의 나무를 재목으로 쓰게 해주시었다.

그러나 6.25로 큰 형님이 행방불명이 되시고 우리형편이 기울었을 때 외숙모(둘째부인)는 딸들과 함께 우리어머니 감나무의 감을 모두 따가곤 하였다.

외삼촌이 감을 직접 따러오신 것은 못봤다. 그러나 외삼촌의 묵인하에 외숙모 단독으로 딸들을 데리고 와서 따간 것인지 그 내용은 알 길이 없다.

외숙모가 딸 둘을 데리고 어머니 감나무 감까지 몽땅 따가는것을 나도 몇 번 목격했다. 내가 고등학생 때는 속상해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그놈의 감나무 내가 베 버리겠다고 한 적도 있다. 어머니의 만류로 그만두었지만 하여간에 감나무 때문에 어머니와 외삼촌이 감 딸 때면 매년 남매가 다투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외삼촌에게 어머니(나의 외할머니)가 나에게 준 감나무인데 왜 오빠 네서 감을 따 가느냐며 항의하면 외삼촌은 "어 내가 안땄어" "난 몰라"하곤 하셨다. 그러고 보면 외삼촌이 감을 직접 따는 것을 본 일은 없다.

외숙모는 감을 따가고 나서는 소쿠리에 감 몇 개를 사람을 시켜 우리 집에 주기도 했는데 어머니는 감 몇 개를 보시고는 너무나 속상해하시며 나보고 다시 갖다주고 오라고해 내가 외삼촌집 마루에다 도로 가져다 주고 온 적도 있다.

외삼촌 소유는 아니었으나 외가댁 종중 소유의 수백 그루가 넘는 감나무와 수천 그루의 밤나무를 관리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내가 중학생이고 동생이 초등학생 때 어느 해에는 외삼촌댁에서 밤을 따 달라고 하여 나와 동생이 하루종일 밤을 따준 적이 있었다. 저녘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밤을 따주었다. 집에 올 때 외숙모는 우리형제의 작은 주머니에 밤을 넣어주었다.

우리형제는 집에 돌아와 어머니 앞에 외삼촌 네서 밤 따주고 얻어온 밤을 자랑삼아 우리집 마루바닥에 신나게 꺼내놓았다.


어린아들 형제의 작은 주머니에서 나온 밤은 모두 합쳐 30여알 남짓, 이를 본 어머니께서는 기가 막혀 얼른 다 도로 갖다주고 오라 하여 내가 외삼촌댁 마루에다 내던지고 온 적도 있다.

하루종일 어린 형제가 밤 따주고 수고비로 받은 것이 밤알 몇 개였다. 못사는 집의 서러움 이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외삼촌댁이란 분한테 받은 서러움이였다. 못살면 친척이고 뭐고 간에 괄시받고 슬픈 것이다.

요즈음 나는 옛날 당시를 회상하며 매년 형님을 모시고 용인 천안등지로 밤 따러 간다. 형님께서도 밤을 주우시면서 과거 이야기를 하신다.

이상 나의 자서전 유유자적에서 발췌


2006.9.7

형님모시고 천안 유성농원으로 밤따러 갔을때


메밀꽃 필 무렵
사랑하는 딸내외와 함께 산책하실때



형님가신지 어연 1년

우리가족 모두가 형님 뵈러왔습니다.



잡초 제거 하기



선산밭 가꾸기




잡초 제거하기



잡초 제거하기



잡초 제거하기



비가 와서 음식물은 준비할수가 없었습니다.



묵념 준비



손자 카리스마는 큰할아버지를 뵈러 와서 즐겁고,

손자 신통방통은 장화신고 완전무장하고 큰할아버지를 뵈러 왔습니다



형님 좋아하시는 커피를 채원어멈이 가방에서 꺼내고 있습니다.




채원어멈이 커피를 올리고 있습니다.

형님! 이 아우가 지켜보고 있으니따끈한 커피 한잔 드세요.




올해는 형님의 큰사위 김서방 덕분에 잔디가 아주 잘 자라고 있습니다



남양형수님이 오늘(7/20) 별세하셨습니다.

형님보다 1년후같은 날입니다.

형님이 계셨으면 이 아우와 같이 가셨을텐데 ..

어데를 갈때는 이렇게 허전할수가 없습니다.



형님! 가족들이 이렇게 다들 모였습니다.




비가 엄청 오고 있습니다





태풍 갈매기 영향으로 비가 많이오고 있습니다.

가족일동 묵념.

손주들도 큰할아버지 편히 쉬시라고

두손을 마주잡고 엄숙하게 묵념하고 있습니다

형님 극락세계에서 편히 쉬십시요.



추모사(追慕辭)


1946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1951년 전쟁 중에 이 아우가 중학교 입학을 했었지요. 양식이 없어 죽으로 연명하던 시절이였지만 형님 자신이 못배운 것이 한이 되신다며 어머님과 함께 이 아우는 가르켜야 된다며 중학교를 보내주셨습니다.

나는 중학생이였지만 신발이 없어 어머니의 여자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니다가 훈육선생님한테 중학교 망신시키는 놈이라고 야단맞은 사실을 아신후 어머니와 의논해서 내 운동화를 사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1955년 고등학교 2학년 제2학기 시험볼 때 학교에서 등록금을 안낸 학생은 시험을 보게 할수 없다하여 학교에서 집으로 쫒겨 왔었지요.

이때도 역시 형님은 어머니와 의논하신후 충선이 시험은 꼭 보게해줘야 된다며 강사간 두마지기 논의 덜 영근 벼를 베다가 쪄서 쌀을 만들어 이 동생의 등록금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나는 젖은 볒단을 무겁게 지고 걸어가던 형님의 뒤를 따라가며 형님의 고마움을 그때 가슴속 깊이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때부터 훗날 내가 돈을 벌면 형님을 위한 일이라면 형님을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것이라고 다짐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형님께서는 동생 범선이와 조카 승열이도 공부시켜 주셨고 계속해서 형님의 1남2녀를 공부시키셨습니다.이 세상에서 형님만큼 장한 형님은 안계십니다. 형님이 아니셨다면 오늘날의 이 아우는 없습니다.


형님과 나는 한평생 살아오면서 언제나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는 의좋은 형제였습니다.

형님 뵙고 싶습니다. 형님 눈물납니다. 편히 쉬십시요.

2008.7.20

형님 가신지 1주년을 맞이하며 아우 층선이가

이 사진이아주 귀중한 추억의 사진이 되였습니다.


어버이 살아신제 섬길일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정철.

不孝父母死後悔. 불효하면 부모 돌아가신 뒤에 후회한다

부모 생전에 불효자가 부모 돌아가신후

천백번 절을 한들 무슨 소용있으며

뒤늦게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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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순 여사님 !

고히 잠드소서

안승순 여사님은 나의 사촌형수님이시다.

2008.7.20 영민하셨다.

작은댁 선산 가는길



나의 사촌형님의 유택

자손들이 잡초를 뽑고 있다.





4촌 큰형님, 작은형님이 잠들고 계신 곳이다

생전의 형님들의 모습이 그립다.



사촌형님옆에 형수님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空手來空手去是人生(공수래공수거시인생)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여

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생종하처래 사향하처거)
날 때는 어느 곳에서 왔으며, 갈 때는 어느 곳으로 가는가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나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인 듯하고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죽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것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뜬 구름 자체는 본래 자체가 실이 없나니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죽고 사는 것도 역시 이와 같도다

獨一物常獨露(독일물상독로)
그러나 여기 한 물건이 항상 홀로 드러나

湛然不隨於生死(담연불수어생사)
담연히 생사를 따르지 않네

인생사 공수래 공수거

고희 잠드소서




작은댁 선산에서 바라다본 풍경

10시방향의 녹색기와집이 홍승철 조카댁이다




작은댁 선산에서 바라다본 풍경



작은댁 선산에서 바라다본 풍경




작은댁 선산에서 바라다본 풍경




작은댁 선산에서 바라다본 풍경

나의 조부모님이 사시던 집터(빨강기와집 앞)와

나의 부모님께서 신혼초에 사시던 집터(나무아래 밭)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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