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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

2008벌초

2008 벌초


정성을 다해 조심조심 벌초를 합니다

신혼의 손녀딸 나영이 내외도 한몫을 단단히 했습니다




봉분은 가급적 기계벌초는 삼가고 낫으로 조심조심 벌초를 합니다










예쁜 꽃을 새로 꽂아드렸습니다





나도 도와드려야지..

어린 손자도한몫을 단단히 합니다



작은며느리가 벌초기념으로

아름다운 새 조화를 준비했습니다



조카 승열

벌초를 끝내고






더운데 수고하신다며작은며느리는

냉커피와 시원한 음료수 를 준비해 왔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저희들이 왔어요@

벌초 끝내고 인사드리기




벌초 끝내고 인사드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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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끝내고 기념으로 가족사진

신화는날아가는 제비가 신기 하기만 합니다.



벌초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벌초 그 자체보다도 아이들 부터 집안의 어른들까지 자손들이 모두 모여 돌아가신분의 추억담을 이야기 하며 공경하는 마음을 갖게하면서 가족간에 형제간에 우애를 다지는 모임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벌초만이 목적이라면 자손들이 구태여 모일것없이 벌초대행업체에 전화만 하면 벌초는 할수있는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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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를 다 끝내고 가족사진

신화야 상돌에 올라가면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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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벌초에는 조카사위와 손녀사위도 특별 참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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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과 조카들!

올 벌초에는 시집간 조카딸들도 모두 참석해

하늘 나라에 계신 조상님께서도 아주 흡족해 하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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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내 조카들입니다 (큰형님 작은형님의 자손)

좌로부터 진숙,영숙, 효숙, 승열(사진위)

효숙이 핑크색 옷으로 사진이 훤하다

43년전과 오늘!

승열 영숙이가 뒤에 서있고

가운데 효숙이와 맨앞에 진숙이가 서있다(사진아래)

어린기만 하던 너희들이 50 이 넘고

60 이 넘었다니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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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생신날 내가 찍어준 조카들의 사진이다

벌초 그리고 성묘

매년 추석절을 앞두고 묘소가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서나 예초기 소리로 요란하다. 풀 깎는 소리로 시끄럽다 못해 귀까지 멍-하게 하는 그 소리가 들려온지 어연 10여년.

이 소리로 인해 일가 친척이 오랜만에 만나 정겨운 대화도, 궁금했던 서로간 소식도, 선조들께서 어려웠던 시절의 흘러간 생활상도 나눌 수 없는 분위기다.

그런가하면 기계에 의한 벌초로 온 집안이 모여 하루 이틀 걸리던 묘소가 한 두 사람이 해도 불과 반나절이면 끝나게되니 더욱 그렇다.

또한 일의 량이 이쯤되니 집안 어른들이 오직 자식사랑 하나만으로 `바쁜데, 피곤한데, 힘든데 오지 말라'는 말씀 한마디가 집안 모임 단절을 부축이고 있는 것 같다.

원래가 몸 아픈 자식을 보고 안타까운 나머지 대신 아팠으면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우리 부모님들이니 당연하다고도 말 할 수 있겠다.

이뿐이랴, 해마다 멀리서 고생하며 벌초하러 오는 모습이 가엽다고 `화장'시키라며 유언을 하는 분이 많이 계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돌아 가시면서도 벌초 걱정에 고생 안시키려는 부모님! 이것이 바로 한국인이요, 우리네 선조님들만의 인정이 아닌가?

부모님들이 오지 말라 한다고 집안 벌초하는 날도 기억 못하고, 자식들을 편하게 해주려는 분이였는데도 제삿날조차 잊어버린다면 과연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더 기막힌 이야기가 있다. 바쁜 세상에 벌초하는 것만도 매우 다행이라고.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실로 한심스럽다.

동방예의지국, 경로효친사상, 조상숭배, 부모공경, 효는 충의근본, 이 모든 것이 교육의 기본이였는데 그냥 지나간 옛 이야기가 되고만 느낌이다.

교육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인성교육이거늘 이래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간다.

얼마전까지도 음력 8월초 집안 벌초약속의 날이 가까워지면 소위 종손 집 아낙들은 전날부터 음식 준비에 바쁘고 남정네들은 낫을 갈아 숫돌을 챙기고서 묘소로 향했다.

정성스러이 잡초를 뽑으며 풀을 깎았고 낫질을 제대로 못하는 젊은이나 아이들에게는 차근차근 이르며 벌초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마치 먼-날 우리 대신 잘 해달라는 부탁이나 하듯이 말이다.

잠시 쉴 때는 묘소에 대한 살아 생전에 말씀으로 이어지고 다음 장소로 옮기면서는 서로간 소식과 알고 계신 분들의 안부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시간가는 줄 모르게 한 장, 한 장 벌초를 하면서 일가 친척간 우의를 다지는 날로 하루해가 야속할 정도였다고나 할까?.

그러던 벌초에 대한 많은 교훈과 인간 본연의 정겨움은 예초기 등장으로 찾아 볼래야 먼발치 일이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하기야 편하게 살아가는 세상이다 보니 예초기 벌초는 세월의 흐름으로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해야 한다고 보나, 바쁘다고 해서 자기 조상의 묘소를 대행업체에 맡긴다는 예를 종종 듣는다.

그 뿐이랴, 명절 때가 되면 관광지마다 예약 손님이 넘치고 긴 연휴일 경우는 해외까지 나가고 차례는 죄스러움은 있으신지 현지에서 맞춤식 제사상을 차린다니 사실이라면 실로 지구상 어느 나라 제례법인지 할 말을 멎게 한다.

다만 이 모습을 보고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자라겠는가가 걱정스러울 뿐이다. `우리 아빠, 엄마가 그랬으니 나도'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생각 좀 해보아야 한다.

벌초나 차례상 차림의 교훈으로 자손들이 조상에 대한 효성의 표시와 도리로 여긴 우리나라다.

그리하여 옛날에는 아무리 먼 길일지라도 모든 자손들이 예서 제서 모여서 낫으로 여름동안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정성껏 베어 주는 벌초를 하였고 차례를 지냈던 것이다.

한가위 때에 성묘를 와서 벌초를 아니했으면 보기에 흉할 뿐 아니라 불효의 자손을 두었거나 임자없는 묘소라 해서 남에 웃음거리가 됨으로 한가위에 앞서서 벌초하는 것이 관습으로 되어 있는 우리의 풍습이다.

세상 살아가려면 궂은 일(Dirty)도 해야 하고, 힘든 일(Difficult)도 해야 하며, 또 위태로운 일(Dangerous)도 해야 한다.

이 3D현상을 극복해야만 비로소 당당하게 한사람으로 자기 인생을 극복해 나가리라 생각한다. 작금의 젊은이들은 거의가 핵가족화의 진행으로 역(逆) 3D 환경 즉 온실속의 화초로 자라왔다.

어느 날 내던져진 세상은 궂고, 힘들고, 험한 일 투성이다. 이걸 감내할 기틀이며 역량이 없다면 마음의 뿌리가 흔들리고 작은 일도 참지 못하고 실수를 저지르고 말게된다.

이제라도 벌초하는 날을, 또한 명절 연휴기간을 친척들과 함께 가족 전통체험주간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세워봄은 어떨까 싶다.


그리하여 어른, 아이 함께하며 예초기로 벌초하는 소리 속에서 집안끼리의 정겨움이 넘쳐나게 하고, 정성껏 차린 제례상 앞에서는 집안내력의 뿌리를 찾고 자자손손 조상숭배 정신을 심어주어 문화유산으로 이어가도록 말이다.

빌려온 글


조용한 늦은 밤!나 혼자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니 그 옛날 못난 이아들을

이세상 최고의 아들로 사랑해주셨던 어머니 생각에나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신다.

그 옛날 그시절, 화목했던 우리집 !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님형님 형수님 동생 모두 모두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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