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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

문중선산벌초


장조카 세화 아범과 같이

백곡리 조상님 선산에 벌초하고

오는길에 싱싱한 화성 포도를 포도밭에서 직접 사왔다.

南陽 洪氏

뿌리(ROOTS)


내가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에 친구집에 놀러가서 친구의 아버님들로부터 성씨와 족보를 질문받은 적이 몇 번 있었다.

"남양홍씨"라고 대답하면 남양홍씨 무슨 파냐 몇 대 손이냐 하고 물어보시곤 했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들었던 대로 "참의공파"인데 몇 대 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면서 머리를 긁적거리던 생각이 난다.

솔직히 무슨파 무슨파하는 파도 참외공인지 참의공인지도 확실히 몰랐을 뿐더러 무었을 의미하는지도 몰랐고 더군다나 이분이 어느 때 사람인지 어떤 분인지 참의공이 또 무슨 관직인지 전혀 몰랐다.
그 후에 나이가 들어서도 바쁘게 살다보니 잊고 살다가 결혼후 얼마후부터 나의 뿌리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부터 많이 알게 되었다.

미국의 알렉스파머 헤일리(Haley,AlexPalmer 1921-1992)의 소설 뿌리(Roots)가 1977년 발표되면서 미국은 물론 전세계에서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어 마침내 텔레비전 미니시리즈로 미국을 비롯해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된 바 있다.

나는 이 뿌리 라는 드라마를 관심있게 시청하면서 내가 알고있는 만큼 우리조상의 來歷을 나의 후손들에게 알려주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소년기를 거쳐 청장년을 살다가 노인이 되어서 生을 마감할 것이다.

그야말로 인생은 나그네 길이다, 그러니 내가 어데서 어느 조상으로부터 유래되여 이몸이 태어났는지 그 뿌리는 꼭 알고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남양홍씨 토홍계의 시조 홍선행님과 직계조상 참의공 홍한 할아버님의 누구신지 알아야 된다.


2.世居地


남양(南陽)은 지금의 경기도 수원(水原)과 화성군(華城郡) 일원을 포함한 지역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高句麗)시대의 당성군(唐城郡)을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이 당은군(唐恩郡)으로 개칭 하였다.

고려(高麗)초에 다시 당성군으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수주(水州:수원)와 인주(仁州;인천)에 편입되기도 했으나 1310년 (충선왕 2)에 남양부(南陽府)가 되었다.

조선조 말기에 남양군이 되어 인천부(仁川府) 관할이 되었다가 1913년 군을 폐하고 그 땅을 나누어 영흥면 대부면은 부평군(富平郡)에 편입시키고 나머지는 모두 수원군에 합하였다.

그 후 수원면이 읍(邑)으로 승격되었으며 후에 수원읍 이외의 땅은 화성군(華城郡)으로 수원읍은 수원시로 승격되었다.

洪氏의 본관은 문헌에 59본까지 기록되어 있으나 남양(南陽) 풍산(豊山)부계(缶溪)홍주(洪州)를 비롯하여 10여본이 현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 으뜸 가는 대본은 남양홍씨이며 이어 풍산 홍주부계의 순으로 되어 있다. 남양홍씨 중에는 전혀 계통을 달리하는 두 파가 있는데 이를 구분하기 위해 토홍(土洪)과 당홍(唐洪)이라 일컫고 있다.

3.土洪系
남양홍씨(南陽洪氏)의 토홍계(土洪系)의 시조 홍선행(洪先幸)은 당성(唐城남양의 옛지명)에 세거(世居)한 사족(士族)의 후손으로 고려(高麗)고종(高宗) 때 금오위 별장(金吾衛別漿)을 지냈다.

선계(先系)는 문헌(文獻)이 실전(失傳)되어 정확하게 상고(祥考)할 수 없으나 후손들이 당성(唐城)에서 정착세거(定着世居)하며 가세가 크게 번창하였으므로 선행(先幸)을 시조로 받들고 본관(本貫)을 남양(南陽)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온 것으로 전한다.


4.土洪系의 分派
시조 홍선행의 토홍계는 9세(世)-12세(世) 손(孫)에서 아래와 같이 5개파로 분파되였다.

1.주부공(主簿公) 홍귀호 (토홍 10세(世) 주부공 시조
主簿벼슬을 했다. 참의공의 첫째 작은아버지이다.

2.대호군공(大護軍公) 홍귀연 (토홍10세(世) 대호군 시조
大護軍벼슬을 했다. 참의공의 둘째 작은아버지이다.

3.참의공(參議公) 홍한 (토홍 11세(世) 참의공 시조
나는 참의공의 후손이다

4.문희공(文僖公) 홍언필 (토홍 12세(世) 문희공 시조
참의공의 형님이신 홍형(洪泂)의 2남이다, 즉 참의공이 작은아버지이시다.

5.정효공(貞孝公) 홍언광 (토홍 12세(世) 정효공 시조
참의공의 형님이신 홍형 (洪泂)님의 3남이다. 즉 참의공은 정효공의 작은아버지이시다.


 

5.참의공(參議公)

이름은 홍한 (토홍 11세(世) 참의공 시조
귀해(洪貴海)의 4남


이분이 바로 우리의 참의공(參議公)파 始祖이다.1451(문종1)-1498(연산군4).자(字)는온진(蘊珍).

 


참의공의 參議(참의)는 1498년 연산군때 이조참의가 되었기 때문에 참의공(參議公)이란 명칭이 붙은 것이다.


아버지는 수군절도사 홍귀해(洪貴海.남양홍씨 10世)이며, 어머니는 민효열(閔孝悅)의 따님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85년(성종16)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490년 지평을 거쳐 1493년 헌납이 되었다. 1495년(연산군1)응교(應敎)가 되고, 그뒤 전한.부제학을 역임한 뒤 1498년 이조참의(吏曹參議)가 되었다.


이해에 戊午士禍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인이라 하여 장형(杖刑)을 당한 뒤 경흥으로 유배가다가 도중에서 죽었다.

그뒤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나자 지난날 홍문관에 있을때 연산군의 후원관사(後苑觀射)를 논계(論啓)한 일이 들추어져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다.

중종 때 신원(伸寃)되고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우리의 참의공파 시조「참의공 홍한」을 연산군이 죽인후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출처.이씨조선오백년)


묘는 화성군 서신면 홍법리 산70-1.청명산. 묘비는 숙종 17년 辛未(1691)9/17일 홍시주가 세웠다.

 


6.병사공(토홍 17세(世) 홍시주

우리문중이 조상으로 모시는 兵使公은 1683년(숙종9년)평안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한바있고 사후 병조참판(兵曹判書)에 추증된 17세(世) 홍시주(洪時疇)(1626.9.3-1707.11.24)이다.

홍시주는 장희빈 그리고 四色黨派로 당쟁이 최고조에 달했던 肅宗朝에 서로 모함하고 시기하는 와중에 큰아들 홍이하가 南人인 윤휴(1617~1680)의 사당을 세울 것을 주장했다하여 西人들의 파직상소로 관직을 한때 그만두게 된 적도 있다.(숙종실록 26권 20년.1694년)


17세(世) 병사공 홍시주(洪時疇) 묘는 화성군 마도면 백곡리 홍남선(홍승훈부친)님댁 옆산에 있다


7. 利城公 홍이석 (토홍 18세(世)



이성공 홍이석 모친이며

병사공 홍시주의 부인해주최씨 묘

(홍승철댁 뒷산에 따로 떨어져있어 2009. 윤5월에 이장계획)

이성공 홍이석의묘

利城公 홍이석 (토홍 18세(世)

홍시주의 4남이다.

홍이석 할아버지의 모친이신 해주최씨 할머니의 묘는 홍승철댁 뒷산에 있다. 나는 해주 최씨의 아들 18세(世) 利城公홍이석 님의 자손이다.

우리들이 모시는 18세(世)利城公홍이석님의 묘만 남겨두고 19-25세(世)조상님의 묘
는 화장으로 모신 후 비석만 일렬로 모셔 놓았다. 화성군 마도면 백곡리


8.나의 족보


남양홍씨> 토홍(시조 홍선행)> 참의공파(토홍 11세((世) >병사공파(토홍17 ((世) >이성공파 (토홍 18세 ((世) > 홍충선(토홍 27세((世))

한마디하기

속담에 가난뱅이 족보자랑만 한다 란 말이있다. 자랑할만한 것이 없다보니 조상자랑만 한다는 뜻이다.

우리들은 조상 자랑만 할것이 아니라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이 나를 자랑하는 조상이 되도록 하자.

(이상 유유자적 자서전에서 발췌)



문중선산 벌초하기

2008.9월 첫째 일요일은 매년 남양홍씨 이성공 홍의석(남양홍씨 토홍계 18세(世)할아버지의 자손들이 모여서 벌초하는 날이다.

장조카 승열이와 같이 벌초하러마도면 백곡리 선산에 벌초하고 왔다.



문중의 자손들이 열심히 벌초하고 있는 모습이다

칼퀴를 들고 열심히 일하는 홍승열



문중의 자손들이 열심히 벌초하고 있는 모습이다



벌초를 끝낸후 조상님께 제올리기

오늘 온 이많은 사람들중에 나와 같은 항열은 나 혼자였다

모두가 한항열 아래인 조카뻘 되는 사람들이다

지난세월 매년 벌초때면 만나뵙던 그 많던 4촌 6촌 8촌 형님들께서는

한분 두분 모두들 다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여러 친척형님들의 생전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 혼자인생무상을 새삼느끼고 있는데..

조카들이 나보고 다가와서 하는말!

아저씨께서는 저희들이 다할테니 일하지마시고 가만히 쉬시란다.



정기총회 소식!

벌초가 끝난후 홍승철조카댁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아래와 같이 문중회의를 했다.

1.이성공의 모친 해주최씨 할머니의 묘를 2009년 윤5월에 이성공 묘 옆으로 이장한다.

2. 이성공의 묘가 위의 사진과 같이 오래되여

2009. 윤5월에 새롭게 단장하기로한다. 봉분과 잔디 비석등을 새로 꾸민다.

3.2009년 윤5월에이장작업과 봉분 단장 작업을 하기위해서는 현재 적립된

돈으로는 부족하므로 정회원 1인당 10만원씩을 2008년 이내에 걷기로 한다.

4.벌초하러도 않오고 회비도 안내는 회원에게는 독촉장을 보내 수납을 독촉하도록 한다.

참고로

현재 정회원은 28명이다.

정회원의 자격은 20세 -70세, 70세 이상은 고문회원




선조님들의 벌초를 끝낸후 작은댁 묘소에도 들러 참배했다





선조님들의 벌초를 끝낸후 작은댁 묘소에 들러 참배했다




농심

땀으로 결실을 맺은 포도송이를 매만지는 농부의 마음은 뿌듯하기만 하다

(사진 홍승철조카)





벌초가 끝난후 포도밭에서 직접 싱싱한 포도를 사왔다

밤늦은 조용한 시간, 감미로운 키타연주 소리를들으며 명상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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