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백운산 계곡이다.
산림이 울창하고 공기가 맑아
많은사람들이 등산하는 곳이다.
1945년 입학해서 1951년
졸업했던
초등학교 동창들이 모이는 날이다.
유무웅회장 내외분이 멀리 삼길포항까지
가서 생선회 를 마련한 푸짐한 야유회였다.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여 고희의 나이가 되였지만
서로 만나면 완숙아 진필아 하며
소꿉장난시절의 동심으로 돌아간다.
불르지 않아 녹슨 할머니들의 이름이 여기
동창모임에 와야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3개월에 한번씩 만나는
동창들의 소식도 궁금하고 할말도 많다.
세월에는 어쩔수없는지 대머리가 많이 보인다.
소꿉장난하며 공기놀던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김영순이와 김진필이가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회식이 끝나고 재미나는 이야기 시간이다.
시간가는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들은 스스럼없이 아무 말이나
할수 있어참으로 편하고 좋다.
그러고 보니 유무웅회장 혼자만 꽃밭에 앉아있다.
사진 좌로부터
이윤규 류송열 홍충선 이근욱 박길순
왕림에 있는 은행나무
내가 고천초등학교 다닐때 왕곡리
이홍순 선생님집 마당에 있던 수령이 수백년된 은행나무이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선생님댁에 놀러와서
은행나무밑에서 쉬던 생각이 난다.
지금은 나무도 많이 늙어 가지가
많이 상했으나 아직도 건재한 모습이다.
백운산에서 내려오다가 옛생각을 하면서
내가 차를 세우고 동창생들과 함께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왕림(旺臨)소개
고천지구대 옆 옥개도로을 따라 동쪽으로
백운산 아래에 위치한 마을이다.
이곳은 조선조 연산군때
정주목사를 역임하고 청평군에 책봉된
김우증(金友曾)이 중종반정(中宗反正)에 공을 세워
동쪽으로는 백운산(白雲山),
서쪽으로는 오봉산(五峯山),
남쪽으로는 지지대(遲遲臺),
북쪽으로는 모락산에 이르기까지 사방십리를
사패지로 받아 처음으로 자리를 잡은 이래,
그의 후손들이 세거하기 시작하면서 취락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구전에 따르면 조선시대 그 이름이 높던
정조대왕이 수원의 융릉(사도세자의 묘소)을 참배하고
환궁하는 길에 이곳에 친림(親臨)했다고 하여
'왕림'(旺臨)이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본래는 왕림(王臨)이라고 해야 옳으나
사가(私家)에서는 임금 '왕'(王)자를
사용할 수가 없어 임금 왕(王)자
앞에 날 '일'(日)자를 쓴 것이라 한다.
왕림은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마을
위 동쪽지역은 청풍김씨의 사당이 있으므로
'별묘'(別廟) 또는 '웃말'이라 부르고,
마을회관 주변은 '향촌'또는 '아랫마을'이라 부른다.
회식하고 이야기 한참하는
시간을 보낸후 마지막으로 노래방이다.
이것이우리동창모임의 정해진 코스이다.
노래부르는 여사님은
부천 이종인 사장의 사모님이시다.
노래 레퍼토리가 많고 명창이다.
어둠컴컴한 노래방
사진이 선명하게 잘도 나왔다.
음악도구 들고 있는 젊은 사모님은
우리동창회를 헌신적으로 돌봐주는
유무웅회장님의 사모님이시다.
노래도 잘하고 인기도 있어
우리 동창명예회원에 위촉되였다.
오늘 동창모임에
참석한 전원의 모습이다.
세월무상! 대머리 할아버지들이 많이 보입니다.
1번은 누구이며 8번은 누구일까. 다음 모임에
만나면 주인장이 사진 인화해서 무료제공 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