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저수지에서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을 가졌다.
백운저수지는 청계산·백운산·모락산 가까이에 위치한 인공호수이다. 처음에는 저수지로 만들어졌으나 평촌이 신도시가 되면서 저수지에서 호수로 바뀌었다.
전체면적 36만 3636㎡로, 1953년 9월 안양·평촌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처음에는 저수지로 만들어졌다.
이후 평촌이 신도시가 되면서 저수지에서 호수로 바뀌었고, 주변에 청계산·백운산·모락산 등이 있어 이 일대가 유원지가 되었다. 주변의 산에서 흐르는 물이 유입되어 물이 맑고 경치가 수려하며 서울에서 가까워 행락객이 늘고 있다.
어종이 풍부해 낚시와 모터보트·수상스키 등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고, 주변에 신책로·야영장·방갈로를 비롯하여 숙박시설과 음식점, 카페촌 등이 형성되어 있으며, 호수순환도로와 대형 주차장이 있어 편리하다.
의왕시에서는 호수를 중심으로 도시공원을 조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 의왕시의 관광명소가 될 전망이다.
해방되기 6개월전 1945.2월에 초등학교를 입학해서
한국전쟁이 한창일때인 1951.8월에 졸업했다.
70여명이 입학했으나 전쟁중이라 졸업생은 35여명만이 졸업했다.
세월앞에 장사없다더니 그 곱던 얼굴들이 모두들 망가졌다.
논쟁! 찔레꽃이 붉게피다니??
아름답게 붉게핀 제주 찔레꽃
찔레꽃이 붉게피나? 내기하기
찔레꽃 붉게피는 남쪽나라 내고향 ~ 으로 시작하는 대중가요
찔레꽃은 백색인데 붉게피다니 노래가사가 틀렸다고 초등학교 동창생들이 모두들 우겨서 알아봤다.
찔레꽃 노래의 가사처럼 남쪽나라 내고향 즉 남쪽지방 제주도의 토종 찔레꽃은 붉은색 꽃도 많이 핀답니다. 이름은 제주찔레(R. luciae)라고 한답니다.
그러니 가사가 엉터리는 아닌셈이지요!
다만 찔레꽃의 노래가사는 작사자가 석양에 붉게 물든 찔레꽃을 표현한 것으로 작사자 고향의 아름다운 경치를 묘사한 것이라고 하는군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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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대왕님! 중종대왕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 못난 후손은 이렇게 무릅꿇고 사죄합니다
파혜쳐진 왕릉
동창생중에 전주이씨 성종대왕의 후손이 있다. 후손으로서 선릉에 매년 가서는 제례를 올린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선릉의 슬픈역사를 아느냐고 물어보았더니전주이씨 성종대왕 후손왈 모른단다. 해서 내가 역사설명을 해주었다.
우리들이 선릉을 자주 지나다니지만 선릉이 누구의 능인지 그리고 그 옆에 정릉이 있는지도 잘 알지못한는 사람이 많다.
선릉[宣陵]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三成洞)에 있는 조선 성종(成宗:재위 1469∼1494)과 그의 계비 정현왕후(貞顯王后) 윤씨(尹氏)의 능과 같은 선릉의 역내에 있는 중종(中宗:재위 1506∼1544)의 정릉(靖陵)이 함께있다.
(참고로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정릉 [貞陵]은 한문으로 정자가 다른 조선 태조 계비 신덕왕후(神德王后) 즉 방번(芳蕃)·방석(芳碩)의 어머니 묘이다)
그런데 선능과 정릉 즉 성종임금과 중종임금의 두능은 임진왜란당시 왜군들에 의해 철저하게 도굴당하고 시신마저 소각당하여 선조때 그 재를 모아서 개장한 슬픈 왕릉이란 사실이다.
즉 중종은 자기자신은 물론 아버지 어머니의 시신이 모두 없어진것이다.
더군다나 그 재마저누구의 것인지 확실치 않다고 하니 이 얼마나 슬프고 기막힌 일인가. 자료출처. 이상태지음 조선역사 바로알기
중종
성종의 2남. 연산군(燕山君)의 이복동생. 어머니는 정현왕후(貞顯王后) 윤씨(尹氏).
1494년(성종 25) 진성대군(晉城大君)에 봉해졌는데, 1506년 박원종(朴元宗) ·성희안(成希顔) 등이 일으킨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왕에 추대되어 즉위하였다.
연산군 시대의 폐정(弊政)을 개혁하였으며, 1515년(중종 10) 이래 조광조(趙光祖) 등의 신진사류(新進士類)를 중용하여 그들이 표방하는 왕도정치를 실시하려 하였다.
그러나 조광조 등의 개혁방법이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고, 또 조급하게 서둘렀기 때문에 훈구파(勳舊派), 즉 반정공신(反正功臣)들의 반발을 초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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